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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질, 벗겨내기 보다 충분히 보습해줘야  겨울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병원을 내원하는 환자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건조함 때문에 생긴 피부염을 호소하는 환자들이다. 예전에는 주로 노인에게 많았지만 최근에는 젊은 층에도 피부 건조증이 많고 건선이나 아토피 등 각종 피부염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이 때 더욱 악화되므로 특별히 더 주의하고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건조증 증상 중에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 중에 하나가 각질인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각질층이 건조해지고 피부가 함유하는 수분의 양이 적어지게 되면서 피부 건조증이 잘 생기게 된다. 각질은 겨울철 건조함이 심해지면 살이 트는 것처럼 피부에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며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주로 피지 분비가 적은 팔꿈치, 발꿈치, 허벅지나 복부, 정강이와 같은 부위에 발생하고 밤이 되면 그 가려움이 더욱 심해지게 된다. 너무 가려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긁게 되면 긁은 부위가 손상돼 가려움이 더 심해지고 세균이 감염돼 염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헤야 한다.흔히 사람들은 각질이 좋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 때를 밀거나 벗겨내야만 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각질은 외부와 피부 사이의 장벽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피부가 일정한 수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작용을 하므로 벗겨내기보다 충분한 보습을 해주는 것이 더욱 좋다.  이러한 피부 건조증은 생활 속 습관을 통해 미리 예방할 수가 있다. 피부를 지나치게 문지르거나 비누·세제를 많이 사용하는 목욕 습관은 피부건조증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되므로 각질을 심하게 미는 목욕을 피하고 목욕 후에는 보습제를 충분히 바르는 것이 좋다. 또한 꼭 끼는 옷도 피부 자극을 일으켜 건조함과 가려움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면 소재의 옷을 여러 겹 입는 것이 좋다. 옷은 가볍게…습도는 50~60%또한 실내 온도는 너무 덥지 않게 하고 옷을 가볍게 입어 비교적 서늘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공기 중의 적당한 습도 유지를 위해 가습기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습도는 약 50~60%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혹 피부 건조증으로 인해 피부가 가려울 때는 심하게 긁지 말고 가려운 부위에 얼음을 비닐로 싸서 대거나 간단한 목욕 후 보습제를 바른다. 그리고 피부과 전문의의 처방을 받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고 습진을 가라앉힐 수 있는 국소 도포 스테로이드제와 보습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피부의 각질층은 4~6주 정도면 자연 회복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와 예방에 주의를 기울이면 4주 정도면 충분히 치유될 수 있다. 피부건조증은 조금만 신경 쓰면 예방이 가능하지만 그대로 놓아두면 습진으로 악화돼 고생을 하게 된다. 수분과 피지가 부족하면 쉽게 악화되기 때문에 더 이상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31 00:00

 최백호 <내마음 갈 곳을 잃어>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연말연시에 부르는 ‘오빠 가수’ 노래  겨울의 문턱이다. 만추(晩秋) 끝자락의 붉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이 뚝 뚝 떨어지며 앙상한 속살을 드러낸다. 스치는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럴 때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쓸쓸해진다. 감성의 연륜은 고목의 나이테처럼 가는 세월 속에 결코 속일 수 없는 것. 차 잔을 들며 듣는 초겨울의 노래가 더욱 따뜻함으로 성큼 다가온다. 감상적 맛을 물씬 풍기는 가요,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을 한껏 느끼게 한다. 이 노래는 최백호(57)의 대표곡이랄 정도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최종혁 작곡으로 최백호가 작사하고 그가 직접 불렀다.애조 띤 멜로디와 뭔가를 말하려는 듯 한 노랫말이 마음을 잡아당긴다.   상당수 가요들이 그렇듯 한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그 사람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엿들을 수 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지난날 무슨 사연들이 있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한다. 그 속엔 삶이 녹아있고 사랑과 이별, 기쁨과 아픔이 배여있다. 최백호가 부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도 마찬가지다. 우선 제목부터가 그렇다.<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등을 불러 널리 알려진 최백호는 1950년 4월 23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잃었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제2대 국회의원이었던 부친(최원봉)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것이다. 아버지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부정(父情)을 그리워하며 쓸쓸히 보냈다. 생활이 서서히 어려웠던 건 말할 것 없다. 부산 태생 … 아버지 일찍 여의어 부잣집 아들로 남부러울 게 없었던 최백호는 갑작스럽게 기우는 가세를 조금도 비관하지 않았다. 정의감이 강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사리에 어긋나는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횡단보도에 어린이들이 지나가는데 이를 무시하고 달리는 승용차를 보고 끝까지 따라가 따끔하게 주의를 준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처럼 매사에 당당했던 최백호의 젊음에 또 한 차례 큰 아픔이 왔다. 부산 가야고등학교를 졸업, 한창 혈기왕성할 때인 20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슬픔과 방황의 시간이 한동안 이어졌다. 둥지 잃은 여린 새끼 새처럼 삶의 날개를 열심히 퍼덕였지만 허사였다. 사회초년생인 최백호에겐 기댈 마음의 언덕이 필요했다. 그래서 벗 삼은 게 노래와 글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 자유인으로 음악을 가까이 했다. 노래는 그에겐 곧 생활이 되어버렸다. 최백호의 노래와 화법, 글쓰기는 갈수록 깊이가 있었다. 취입한 노래 가사는 대부분 직접 쓴 것이고 가끔 작곡도 했다. 부르는 노래를 잘 새겨보면 그의 이력을 어렴풋이나마 살필 수 있다. 군 제대 후 부산시내 음악 살롱무대를 돌며 노래활동을 했던 최백호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인기를 모았던 가수 하수영에게 발탁, 1976년 가을 가수로 데뷔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31년 전 일이다. 그가 맨 처음 신고한 곡이 바로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다. 이 노래는 사랑하는 연인의 이별을 말하는 듯 하지만 전혀 아니다. 저 세상으로 떠난 어머니를 그린 것이다. 어린 나이 아버지를 잃고 늘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었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자 쓸쓸함 마음 어디 둘 곳이 없어 만든 노래다. 스무 살 가을 돌아간 어머니를 그리면서 뒷골목을 거닐다 쓴 눈물의 가사에 자신이 직접 부른 것이다. 일종의 사모곡(思母曲)인 셈이다. 모정 그리며 가사 직접 쓴 ‘데뷔곡’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지면 서러움이 더해요~’라고 한 첫 소절부터가 가슴이 아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계절이 가을이고, 무성한 나뭇잎들이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처럼 자신을 보호해줬던 어머니의 무수한 음덕이 낙엽처럼 사라지고 나면 서러움이 더해진다는 허전함을 노래한 것이다.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음반판매량이 늘면서 ‘신인 가수 최백호’ 알리기에 충분했다. 정감 있는 목소리가 잔잔하게 깔리면서 노랫말에 은근한 감칠맛이 난다는 평이었다. 애수에 찬 이 노래는 음반이 석 달 만에 6천여 장 팔리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듬해인 1977년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로 나가는 <입영전야>와 <그쟈>가 담긴 2집 음반까지 잇달아 히트하며 인기가수 대열에 끼었다.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도 꽤 알려졌다.이 후 인기탤런트였던 김자옥(지금은 가수 오승근씨 부인)과 결혼, 세간의 이목을 끌었으나 얼마 못 가서 갈라섰다. 이혼과 방황 등 곡절을 겪은 그는 1984년 재혼, 새 가정을 꾸며 안정을 되찾았다. 아내와 딸 하나를 두고 있다.이어 <영일만 친구> <고독>과 제2의 전성기를 열어준 <낭만에 대하여>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도 발표했다. 통속적인 남녀 사랑타령에서 벗어나 인생을 관조하듯 깊이 있는 인생관을 펼쳐낸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새로 편곡해 다시 음반에 실은 <보고 싶은 얼굴> <열애> 등도 맛과 흐름은 같다.최백호는 2003년 데뷔 28주년을 맞아 신곡 <청사포>가 담긴 베스트앨범(제목=‘최백호 히스토리’)을 냈다. 2000년 <어느 여배우>를 내놓은 뒤 3년만이었다. 신곡 <청사포>는 그의 고향인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 아래의 아담한 포구이름으로 ‘푸른 모래의 작은 항구’란 뜻을 갖고 있다. 한 여인의 추억을 회상하는 포크와 트로트가 접목된 분위기 곡으로 먼저 취입한 <낭만에 대하여>와 꽤 닮았다. 세월의 허무함, 인생의 외로움, 덧없음을 그려낸 것이다. 첫사랑, 옛 친구, 군 생활과 관련된 추억의 노래를 주로 했던 최백호의 맛을 안겨준다.    국민고독가수로 불릴만한 국내 최대 낭만파 가수 최백호는 요즘 방송인으로서도 맹활약 해 인기를 모았다. 2006년 4월 24일부터 2007년 3월까지 매일 오후 6시부터 KBS 해피FM(106.1MHz) ‘최백호-김민희의 라디오챔피언‘ 프로그램 진행자로 전파를 탔다. 취미는 축구, 특기는 그림그리기. 가수, 작곡가, 작사가, 방송인, 화가 이외에도 1995년 3월부터 대중가요 노랫말 만들기 모임인 시락회 회원으로도 뛰고 있다.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 낙엽지면 서러움이 더 해요 /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 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걸으며 옛일을 잊으리라 /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개 속에 가로등 하나 / 비라도 우울히 내려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하얀 겨울에 떠나요마산고·중앙대 신문방송학과·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부터 한국경제신문·일요신문, 뉴시스, 시사저널, 일요서울(편집국장) 등에서 언론계 생활을 하는 ‘기자가수’다.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했다. 취입곡으로 <이별 없는 마산항> <마산포 순정> 등이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31 00:00

 인터뷰  오동진 동부생명 FP 고객과 신뢰 쌓은 덕에 지난해 150여 건 계약   인생의 행복한 동반자를 자청하는 동부 생명 오동진 FP. 그는 고객의 인생을 책임지는 행복설계사이다. 이제 FP(Financial Planner) 3년차인 그는 자신의 일을 “고객의 돈을 평생 관리하며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와 같다고 말한다. “저는 제 일이 단순히 보험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평생을 같이 하면서 재무를 설계해주는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고객을 만날 때 상품하나를 팔아야할 대상이 아니라 고객의 재무를 책임져 주어야 하는 평생 동반자라는 생각을 갖습니다.”그는 재무 설계를 할 때 각각의 고객에 맞게 맞춤 설계를 한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른 것처럼 고객마다 맞는 보험 상품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객을 만나면 고객에게 맞는 보험을 찾기 위해 수십 번을 고민한다. 그렇게 찾은 상품을 고객에게 권하면 대부분 만족 해 한다. 이것이 그가 재무 설계사로 살아가는 비결인 것이다. 고객 만나러 가기전 옷매무새 다듬어오동진 FP는 고객을 만나러 가기 전 항상 거울 앞에 선다.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거울 앞에 서면 자기 자신이 들여다보여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고객 앞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저에게 있어 영업은 거울입니다. 거울 앞에 서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요. 고객들을 만날 때 거울 앞에 선다는 기분으로 만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죠. 내 실적보다 중요한 것이 고객과 신뢰를 먼저 쌓는 것입니다.”과거 많은 설계사들은 보험 상품 팔기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해도 어느 정도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했다. 신뢰가 쌓여지지 않으면 고객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한해 오 FP는 150여건의 계약을 맺었다. 고객과 신뢰를 먼저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그는 처음 FP를 시작할 때 선입견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을 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다. 남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아서가 아니라 고객들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이일을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비전이 생겼습니다. TV에 나오는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 아이들과 같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재단을 세우고 싶습니다.”TV를 보다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20년 후엔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불치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 아이 부모가 한 달 만원정도 하는 보험만 들었어도 저렇게 힘들어 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달에 만원짜리 보험조차 들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그는 이일을 시작한 첫해 일 년에 양복을 벗은 날이 3일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지금도 그는 고객들의 행복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뛰고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31 00:00

 세계 2백여개 국 여행가  노소남씨(60). 여느 주부처럼 1남2녀의 자녀를 둔 어머니다. 다른 게 있다면 외국이 안방이라는 것. 지금까지 캠코더 하나 둘러메고 다닌 나라가 2백여개 국에 이른다. 지구를 한바퀴 돈  베테랑 ‘주부 여행가’였다. 그녀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동남아부터 해외여행을 시작했다. 홍콩 마카오 싱가폴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이듬해 호주 뉴질랜드 피지로 떠났다. 그러나 썩 만족하지는 못했다. 풍경만 보고 사람은 보지 못했기 때문. 다른 나라 사람들은 뭘 먹고 뭘 입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1991년 드디어 세번째 여행을 떠났다. 인도·네팔. 그녀는 드디어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이때부터 인도에 푹 빠졌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나라로 인도(印度)를 꼽는 것은 바로 그 나라에 인도(人道)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 우리나라에서 ‘철학’깨나 한다는 사람이 인도를 방문해 여관에 투숙했다. 도마뱀이 지나가고 벌레가 슬금슬금 침대를 지나가는 것을 보다 못한 그가 여관 주인을 불러놓고 크게 호통을 쳤다. 손님 대접을 이따위로 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데 도리어 여관주인은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툭하니 한마디 내뱉었다. “얘들도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예요. 혼자만 살겠다고 하면 얘들은 어떻게 해요?” 여행은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  그녀는 이제 해외여행이 새롭지 않다. 외국이나 한국이나 사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베테랑 해외여행가인 그녀의 최종 결론. 해외에도 거지가 있고, 도둑이 있고, 부자가 있고, 성인이 있다. 다만 해외여행의 보람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손거울’ 하나 얻는 것이란다. 그리고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것이란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 다니는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을 보면 참 기가 차요. 그네 나라 여성들은 까만 천으로 눈 코 입만 빼고 다 가리고 있는데 외지인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슴이 크게 파인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예요. 우리나라 남자들도 뭐라 하는데 그 나라 남자들은 또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여행의 관심분야도 자연에서 풍물, 풍물에서 문화, 문화에서 종교로 옮겨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을 다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데나 끼어든다.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리면 먹을거리를 더 준다. 그녀의 노하우이다. 여자의 몸으로 오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워낙 누더기 차림으로 다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다”며 웃는다. ‘책 벌레’로 해외여행체험서 준비중  ‘DVJ(디지털 비디오 저널리스트)’로도 유명한 그녀는 KBS ‘세계는 넓다’와 케이블TV 등에 출연해 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개인일로 뉴욕에 다녀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몇 일 밖에 나갔다오면 책 한 권 쑥 내더라구요.” 책벌레인 그녀는 인스턴트와 같은 책은 싫어한다. 하여 그 역시 집필이 늦다. 그렇지만 이제는 ‘책 좀 쓰라’는 성화에 이길 수 없나 보다. 조용히 해외여행 추억을 떠올리며 집필할 공간을 찾고 있는 중이다.  Q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