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명 정부, 서민경제 살리려면 대출 물꼬를 터라!
집값 안정과 생산적 투자 확대, 금융정책은 두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 조연행 컬럼 ] 서민경제가 얼음장이다. 좀처럼 녹을 기미가 안보인다. 정부가 집값 잡겠다고 대출을 묶어놓아 서민대출도 덩달아 막혔다. 이래저래 서민경제는 풀길이 없어 보인다.
아파트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정책 목표는 타당하다. 집값 급등은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하고, 과도한 부동산 쏠림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집값을 잡는 과정에서 서민의 생계자금과 자영업자의 투자자금까지 막힌다면 정책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부동산시장 안정의 성과가 민생경제의 침체라는 대가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정부는 2025년 10·15 대책에서 규제지역의 일반적인 주택담보대출비율을 강화하고 주택가격에 따라 대출한도를 차등화했다. 다만 생애최초 구입자와 일정 요건의 서민·실수요자에게는 별도 기준이 적용된다. 대출규제는 지역과 용도, 차주의 조건에 따라 다르다. 문제는 이러한 규제의 취지가 금융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이다.
서민경제에서 대출은 단순한 빚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음식점 주방을 고치고, 낡은 숙박시설을 정비하고, 작은 공장에 기계를 들이는 데 필요한 사업의 밑천이다. 사업자가 투자하면 인테리어업체와 자재업체에 일감이 생기고, 고용과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연결고리의 출발점에서 자금이 막히면 지역경제의 회복도 늦어진다.
가령 자기자금을 상당 부분 투입해 시설을 마련했지만 마지막 공사비가 부족한 사업자가 있다고 하자. 추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이미 투입한 돈도 묶이고 영업을 통한 수입도 발생하지 않는다. 은행이 대출을 거절하는 것이 개별 금융회사에는 안전한 선택일 수 있지만, 사업의 완성과 상환 가능성까지 외면한다면 경제 전체로는 손실을 키울 수 있다.
주택구입용 가계대출과 사업자대출은 제도상 구분돼 있다. 그렇다고 현장의 자금난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규정에 예외가 있다는 설명에 그치지 말고, 실제 은행 창구에서 사업성 있는 소상공인이 필요한 자금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출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바꿔야 한다.
첫째, 실제 사업에 쓰이는 투자자금의 공급 통로를 넓혀야 한다. 시설개선비와 장비구입비, 사업 완공에 필요한 자금은 사용 목적과 상환 가능성을 심사해 지원해야 한다. 사업자대출을 주택투기에 이용하는 행위는 엄격히 관리하되, 정상적인 사업자에게까지 과도한 문턱을 세워서는 안 된다. 계약서와 세금계산서를 확인하고 공정에 따라 자금을 나눠 지급하면 용도 관리도 가능하다.
둘째, 담보와 과거 소득에 치우친 심사를 보완해야 한다. 장사가 어려워 매출이 줄었는데, 줄어든 매출 때문에 재기를 위한 대출까지 거절된다면 침체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거래내역과 예약·수주 실적, 영업경력, 투자 이후의 현금흐름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미래 매출을 부풀리는 심사는 경계하되, 과거의 어려움만으로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닫아서는 안 된다.
셋째, 지역신용보증과 정책금융을 실제 투자로 연결해야 한다. 지원 규모를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증심사와 은행심사가 지연되거나 한도가 지나치게 작으면 사업자는 투자 시기를 놓친다. 신청부터 실행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사업의 준비 정도와 자금 필요 시점에 맞춰 지원해야 한다. 시설투자 대출의 거치기간과 상환 일정도 수익이 발생하는 시기를 고려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은행의 서민금융 실적을 대출의 질과 접근성으로 평가해야 한다. 담보가 충분하고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실적만으로 금융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성실하게 사업을 운영하며 상환 능력을 갖춰가는 소상공인에게 적정한 금리와 한도로 자금을 공급했는지 살펴야 한다. 정부의 금융정책 역시 가계대출 증가율과 함께 생산적 투자에 필요한 자금이 얼마나 원활하게 공급됐는지를 평가받아야 한다.
물론 대출을 늘린다고 모든 사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수요가 없는 사업에 빚만 더 얹으면 폐업을 늦추고 손실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제대로 된 사업성 심사다. 상환 능력을 따지면서도 회복 가능성이 있는 사업에는 기회를 주는 금융이 필요하다.
민생경제는 구호만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사업자가 투자하고, 그 투자가 일감과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한다면 동네 상점과 작은 공장, 지역 관광시설에서 일어나는 투자에도 자금이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 촉구한다. 아파트값 안정에 힘쓰는 만큼 서민과 자영업자의 투자 여건도 살펴라. 성실한 사업자가 자금 부족으로 공사를 멈추고, 시설개선을 포기하고, 고용계획을 접는 일이 줄어들도록 금융의 문을 넓혀라.
서민경제를 살리려면 일할 사람에게 일할 자금이 돌아가야 한다. 지금 정부가 풀어야 할 것은 생산적 투자를 가로막는 대출의 병목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