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 발달 이론과 기독교 신앙의 성숙
정신분석학과 기독교 입장에서 바라 본 건강한 성장과 영적 성숙의 유비
[김진기의 정신분석 칼럼] 유아, 신앙 초심자의 탄생과 성장의 유사성
오늘은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 관점에서 '마가렛 말러'(Margaret Mahler)의 발달 이론을 살펴보고, 이를 기독교 신앙 안에서의 탄생과 성장의 과정과 비교하면서 풀어본다.
말러에 따르면 아기는 출생 직후 어머니와 자신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공생기(Symbiotic Phase)를 거친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유아는 배고픔과 불안이 어머니의 품 안에서 즉각 채워질 때 세상에 대한 든든한 안전감을 형성한다. 또한 모든 욕구가 충족되는 보살핌 속에서 싹트는 신뢰는 아이가 자라나는 데 꼭 필요한 마음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초기 발달 과정은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영접하며 경험하는 영적 탄생의 모습과 깊은 유사성을 지닌다.
복음(성경 말씀)을 받아들인 신자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 속에서 깊은 위로와 평안을 얻으며, 어머니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처럼 온갖 걱정을 내려놓고 신과 온전히 하나가 된 듯한 안정감을 누린다. 신앙의 출발점에서 경험하는 이 따뜻한 사랑의 체험은 훗날 마주할 수많은 삶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출발점이 된다.
재접근기(Rapprochement)의 양가감정과 신앙적 시련의 상관성
아기는 점차 몸을 움직이고 스스로 걸어 다니며 주변을 탐험하는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 단계로 나아간다.
혼자 걸으며 호기심을 채우는 연습기(Practicing Subphase)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친다. 하지만 곧이어 자신이 아직 작고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재접근기(Rapprochement Subphase)를 맞이한다. 이때 아기는 혼자 멋지게 해내고 싶으면서도 어머니를 잃을까 두려워 다시 품으로 달려드는 혼란스러운 양가감정(Ambivalence)을 겪는다. 혼자 서고 싶으면서도 보호받고 싶어 하는 이 갈등은 자립을 위해 꼭 겪어야 할 과정이다.
신앙의 여정에서도 이와 똑같이 혼란과 의심을 마주하는 회의와 시련의 단계(Stage of Doubt and Trial)가 찾아온다. 처음에 느꼈던 벅찬 감동이 잦아들고 삶의 어려움에 부딪히면, 신자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듯한 느낌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내 고집대로 삶을 이끌고 싶은 마음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흔들림은 신에게 무조건 기대기만 하던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생각과 책임을 지닌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나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 확립과 내적 믿음의 공고화
재접근기의 혼란을 잘 넘기면 아기는 마침내 대상항상성의 확립(Establishment of Object Constancy)이라는 놀라운 성장을 이룬다.
이는 어머니가 눈앞에 잠깐 보이지 않거나 내 뜻을 다 들어주지 않더라도, 어머니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마음 속에 굳게 믿는 능력이다. 아기는 어머니의 좋은 모습과 아쉬운 점을 하나로 품어 안전한 내적 대상(Internal Object)으로 간직한다. 마음 속에 든든한 신뢰의 기둥이 세워졌기 때문에, 아기는 어머니가 곁에 없어도 불안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자아정체감(Ego Identity)을 세워 나간다.
기독교에서 바라는 성숙한 믿음 역시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즉각적인 보상에 매달리지 않는 내적 믿음을 세우는 것과 같다. 성숙한 신자는 기도가 당장 이루어지지 않거나 고난이 닥쳐와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신의 사랑을 마음 깊이 확신하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지녔기에, 신자는 맹목적으로 신에게 매달리거나 반대로 쉽게 실망하여 떠나지 않는다. 신과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 진실한 인격적 교제를 맺는 모습은 영적으로 훌쩍 자랐음을 보여준다.
초자아(Superego)적 강박 신경증의 극복과 참 자기(True Self)의 회복
만약 성장 과정에서 건강한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면, 마음속 불안을 없애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사람들이 내면의 죄책감과 공포를 달래려고 지나치게 규칙에 집착하는 현상을 강박 신경증(Obsessive Neurosis)이라고 설명하였다. 신앙에서도 혼이 날까 두려워 규칙과 의무에만 매달릴 수 있다. 이는 마음속에서 무섭게 야단치는 초자아(Superego)의 눈치를 보느라 생기는 방어 행동이다. 진심 어린 사랑 없이 억지로 착한 척 행동하는 것은 생기 없는 거짓 자기(False Self)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기독교의 참된 가르침은 두려움과 무거운 율법에 짓눌려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영적 자유함(Spiritual Liberation)에 있다. 하나님은 사소한 잘못을 따지는 무서운 감시자가 아니라,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사랑의 대상이다. 신자가 혼날까 봐 떠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신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식을 벗고 진솔한 참 자기(True Self)의 모습을 되찾는다. 억지로 잘 보이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자발적인 사랑으로 나아갈 때 마음에 진정한 평안과 회복이 찾아온다.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be Alone)과 영적 성숙을 통한 참된 자유
어린이의 발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학자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이 강조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be Alone)을 갖추는 일이다. 이것은 외톨이처럼 쓸쓸하게 남겨진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좋은 엄마(Good-Enough Mother)의 따뜻한 돌봄을 듬뿍 받아 본 아이만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이다. 엄마가 옆에 가만히 있어 주기만 해도 아이는 방해받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놀이에 푹 빠질 수 있다. 든든한 신뢰를 마음에 품었기에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창의적이고 씩씩한 아이로 자란다.
신앙이 깊어질 때 도달하는 궁극적인 모습 역시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참된 자유함(True Freedom)을 누리는 삶이다. 성숙한 신자는 남들의 시선이나 칭찬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Presence of God)를 느끼며 평온을 유지한다. 사람들의 평가에 불안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선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안에서 자기만의 바른길을 꿋꿋하게 걸어간다. 결국 아기가 든든한 사랑을 품고 씩씩하게 자립하는 과정과, 신자가 두려움을 벗고 하나님과 자유로운 사랑을 나누는 영적 성숙(Spiritual Maturity)은 온전한 성장을 향한 하나의 길에서 만난다.
내적 대상의 형성과 영적 생명 출산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성숙
어린아이가 어머니와의 따뜻한 신체적, 정서적 접촉을 통해 안정을 얻고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나 다시 새로운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것은 인간 발달의 자연스럽고 성숙한 모습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인 역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깊은 정서적 교제와 사랑의 돌봄을 통해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난다. 이러한 사랑을 내면에 채운 신자는 언제 어디에 있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율법의 억압을 벗어나 참된 자유함을 누리는 당당한 신앙인으로 바로 선다.
그러나 성장의 여정은 단순히 자기 혼자 바로 서는 자립에서 끝나지 않는다. 건강하게 자란 어른이 자녀를 품어 안고 길러내듯, 신앙의 궁극적인 성숙은 연약한 신앙 초심자(Beginner of Faith)를 따뜻하게 품어 새로운 영적 생명으로 탄생시키고 돌보는 데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또 다른 생명을 세워나가는 이 생명의 재생산이야말로, 정신분석학적 발달과 기독교 신앙이 함께 가리키는 영적 성숙의 가장 아름다운 최종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