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복 교육칼럼] 백년지대계를 단순한 ‘산수’로 재단할수 없다 - 지방교육재정부담금 축소 불가
학생 수 감소해도 고정 비용은 동일, 미래 교육(AI, 돌봄) 위해 재원 유지 필요 교육의 힘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경쟁력 강화에 교부금 중요
[소비라이프 / 선종복 교육칼럼 ]
전쟁의 폐허 속에서 아무런 자원도 없던 나라가 한 세대 만에 세계적인 경제·문화 강국으로 우뚝 선 기적. 이 경이로운 역사 뒤에 단 하나의 원동력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연 '교육'이었다. 인재를 길러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배움의 열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교육의 힘으로 세워졌다.
그런데 이 성장의 뿌리가 지금 '산수'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7월 8일 기획예산처와 교육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부금) 개편을 주제로 첫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재정 당국은 "학령인구가 줄어드는데도 내국세에 연동돼 교부금이 자동으로 불어나는 현행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내국세의 20.79%를 시·도교육청에 배분하는 연동제 자체를 손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학생 수가 줄었으니 초·중등 교육 예산도 줄이거나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은 그러나 눈앞의 숫자만 보고 미래의 가치는 보지 못하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경제적 산수'에 불과하다. 이 산수에는 세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첫번째 함정 - 학생 수가 절반이면 비용도 절반이라는 착각
단언컨대 교육은 학생 수에 비례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단순 제조업이 아니다. 학생 수가 절반으로 준다고 해서 학교 건물 유지비가 절반이 되지 않으며, 교실의 불을 반만 켤 수도 없다. 오히려 지금 우리 교육은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질적 대전환'이라는 또 다른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
학교라는 인프라의 상당 부분은 학생 수와 무관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고정비다. 오히려 학생 수 감소는 농산어촌과 원도심의 소규모 학교를 급증시켜, 학생 1인당 교육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학생 수 감소 = 예산 절감 여력'이라는 등식은 교육 현장의 비용 구조를 모르는 탁상 위의 산수일 뿐이다.
두번째 함정 - 교육 수요가 줄고 있다는 착시
학생 수는 줄었지만 학교에 요구되는 역할은 정반대로 급증하고 있다. 과거의 학교가 '가르치는 공간'이었다면, 오늘의 학교는 돌봄과 복지, 정서 지원과 안전 관리까지 떠안은 종합기관으로 변모했다.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비롯한 미래형 에듀테크 인프라 구축, 노후 학교 시설을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국가적 당면 과제인 유보통합과 늘봄학교의 안정적 정착, 여기에 다문화 학생 증가와 특수교육 확대, 학생 정신건강 지원까지. 이 모든 미래 교육의 청사진은 막대한 재정적 뒷받침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신기루일 뿐이다.
방향도 달라졌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 교사 한 명이 수십 명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규모의 경제'였다면, 미래의 교육은 개개인의 특성과 역량을 극대화하는 '개별 맞춤형 교육'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교실의 첨단화, 교원의 전문성 개발, 촘촘한 학교 안전망 구축이 필수다. 학생 수가 줄어들수록 학생 한 명에게 투입되는 교육의 밀도는 오히려 높아져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 역시 더욱 공고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교육은 지금 양적 성장을 넘어,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질적 대전환'의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
세 번째 함정 - "총액은 늘리겠다"는 약속의 이면
재정 당국은 "교부금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총액과 학생 1인당 교부금은 매년 늘어나도록 설계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약속의 전제가 바로 내국세 연동제의 해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교부금 제도가 학생 수 급증기였던 1972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통해 내국세 연동 방식으로 설계된 이유는 명확하다. 교육재정만큼은 그해의 정치적 흥정과 재정 형편에 휘둘리지 않도록 법률로 안정성을 보장하겠다는 국가적 약속이었다.
연동제라는 법적 안전판이 사라지는 순간, 교육 예산은 매년 예산 당국의 심사대에 오르는 여러 지출 항목 중 하나로 전락한다. "올해는 늘리겠다"는 약속이 10년 뒤에도 유효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교원 3단체가 토론회장 앞에서 "개편 논의가 교육재정 축소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친 것은 바로 이 함정을 꿰뚫어 본 것이다.
지출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물론 영유아·고등·평생교육의 재정 확충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타당하다. 그러나 그 해법이 초·중등 교육의 곳간을 헐어 옮겨 담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여서는 안 된다.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의 재원은 별도의 안정적 재원 대책으로 확충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미래 인재 선점을 위해 공교육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교육 예산 삭감은 당장 예산 장부의 적자를 메우는 임시방편은 될지언정, 10년, 20년 뒤 국가 경쟁력의 파산을 불러오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재정 당국에 필요한 것은 교부금을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 교육의 힘이라면, 내일의 대한민국을 살릴 것 역시 교육의 힘이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교육의 숭고한 가치를 단 한 세대의 경제적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은 예산 절감의 영수증이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환경에서 마음껏 꿈을 펼친 인재들이다.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종안을 확정하기 전에, 정부와 정치권의 냉철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