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나의 면역세포'...유전자 스위치 발견으로 다시 암 공격!
두 개의 유전자 비활성화로 CD8 킬러 T 세포 기능 회복, 암 면역치료와 감염병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 제시
[소비라이프 / 김요찬 소비자기자]
연구자들이 면역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새로운 유전적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미국의 솔크 생물학 연구소, UNC 라인버거 종합 암 센터, UC 샌디에이고 연구진은 CD8 킬러 T 세포가 장기적인 면역 방어 세포로 발전할지, 아니면 기능이 약해지는 ‘T 세포 탈진’ 상태로 들어갈지를 조절하는 유전적 요인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 두 개의 특정 유전자를 비활성화하면 탈진한 T 세포가 다시 종양을 공격하는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학술지 Nature에 발표되었으며, T 세포가 장기적인 면역기억과 강력한 항암능력을 동시에 유지하도록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발견이 암 면역치료뿐 아니라 감염병 치료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CD8 킬러 T 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찾아 제거하는 면역 체계의 핵심 세포이다. 그러나 장기간 감염이나 종양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 세포들이 점차 기능을 잃고 ‘T 세포 탈진’이라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세포의 방어 능력이 크게 떨어져 질병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CD8 T 세포 상태를 분석해 유전적 활동을 기반으로 한 ‘유전 지도(Genetic Atlas)’를 구축했다. 이 지도는 T 세포가 강력한 면역 기능을 가진 상태에서부터 심하게 약화된 상태까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연구 공동 책임자인 수전 켁 박사는 연구의 목표가 면역 치료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T 세포 설계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서로 다른 T 세포 상태에서 활성화되는 유전자들을 비교 분석해 보호 기능을 유지하는 세포와 기능이 약해진 세포를 구분하는 핵심 요소를 찾아냈다.
또한 연구팀은 실험실 연구, 유전자 분석, 동물 모델, 컴퓨터 분석을 활용해 총 9가지 서로 다른 CD8 T 세포 상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T 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전사인자들이 발견되었으며, 이 단백질들은 T 세포가 지속적으로 기능을 유지할지 혹은 탈진 상태로 들어갈지를 결정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연구진은 ZSCAN20과 JDP2라는 두 전사인자를 새롭게 발견했다. 이 유전자들을 비활성화했을 때 탈진 상태에 있던 T 세포가 종양을 공격하는 능력을 다시 회복하면서도 장기적인 면역 기억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면역세포의 탈진이 반드시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기존의 가설에 도전하는 발견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구축한 유전 지도가 향후 입양세포치료(ACT)나 CAR-T 세포 치료와 같은 면역 치료 기술을 개선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도는 T 세포가 장기간 질병과 싸우도록 유지하면서 동시에 탈진을 일으키는 경로를 피하도록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면역세포의 기능 저하가 치료 효과를 제한하는 고형암 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연구팀은 인공지능 기반 컴퓨터 모델링과 실험 데이터를 결합해 T 세포를 더욱 정밀하게 설계하는 방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유전자들이 복잡한 네트워크로 작동하기 때문에 어떤 유전자가 특정 세포 상태를 조절하는지 찾기 위해 강력한 계산 도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킬러 T 세포가 강력한 면역 기능을 유지할지 혹은 탈진 상태로 약해질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밝혀내며, 과학자들이 면역 반응을 보다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장기적인 감염과 암 치료에서 면역세포가 약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