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창) 정선 바위안 6형제 6아내, 행복한 가족 공동체 이야기

개성은 강해도 형제 사랑은 깊다 6형제 6아내 시니어들은 지금도 일하며 사랑하며 살아간다

2025-09-16     이주경

[소비의 창 / 이주경]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바위안 마을’

우리 6형제의 고향 주소다.  우리 6형제는 강원도 출신 시니어들이다.

우리 6형제는 각자 아내와 함께 우애좋은 인생 후반전을 누리고 있다. 막내인 나도 60세를 넘었지만 지금도 현역에서 일하는 시니어다.  

6형제 막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육형제의 삶을 글로서 풀어본다

우리 6형제의 삶에는 우리 현대사가 녹아 있다. 우리는 직업이 모두 달랐다.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다닌 학과도 달랐다.
그만큼 개성이 뚜렷한 인생여정이었지만 지금도 우리 6형제 6아내 행복한 공동체는 여전히 자주 모여 나누고 챙긴다.
 
바위안 마을 6형제, 부모님 이야기
 

바위안은 한반도의 허리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의 일부인 정선군 임계천과 골지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농토가 비교적 비옥한 농업 중심의 자연부락이다. 

먼저 부모님이 바위안 마을에다 짐을 풀어 놓게된 사연을 시작으로 6형제의 행복한 공동체 서막이 시작된다.

아버님은 19세 어머님은 21세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버님은 어머님께서 고향인 바위안 마을에서 갈전리로 가는 30리 먼 시골길을 가마를 타고 가던 도중 잠시 쉴 때 연지곤지 찍은 신부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고 하셨다.그 시절은 그랬다고 한다. 

갈전리에서 신혼 중이던 25세때 6.25가 발발했고 북한군이 철수할 때 물자 수송을 위해 아버지께서는 북한군과 함께 북으로 끌려 가다가 아카시아 나무 숲 사이로 도망쳐서 살아 돌아왔다는 이야기. 휴전협정 후, 아버지께서 임계 면사무소에 근무하시면서 가까운 거리인 어머니 고향인 바위안으로 거쳐를 옮겼고, 이 곳이 우리 6형제의 터전이 되었다.

부모님은 자식 중 무려 다섯을 잃는 아픔과 상처를 갖고 그 두메산골에서 생활하셨지만 우리 육형제를 지켜 주셨다. 두 분의 사랑과 희생을 나열하기엔 지면이 부족할 뿐이다. 어머님은 우리 6형제를 사랑으로 키우면서   티격태격, 우당탕탕 지내도 늘 행복하다 하셨다. 

 
인생 후반전 - 사랑하며, 나누며, 챙기며 일한다
 
임계

큰형(이주암, 72세)은 부모님 기대처럼 모범생,우등생으로 동생들의 나침판이었다. 법대 졸업후 한국전력에 입사했다. 첫발령지 인천의 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이후 2칸짜리 지하방으로 옮기면서 형들은 방학 때마다 모여 큰형 집이 육형제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다. 어머님 역할까지 대신해 준 큰형수님의 노고와 희생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다.

큰형 부부는 우리 6형제의 ‘헌신과 감사의 아이콘’이다.

둘째 형은(이주설,70세) 늘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사춘기 때 아버님과 갈등으로 툭하면 학교를 가지 않았고, 중학교 4년에 고등학교는 5년 만에 졸업한 문제아였다. 졸업 후 군을 다녀오더니 각성했다. 제대 후 대학을 늦깍이 공부하여 마치면서 어머님의 힘든 마음을 흐뭇하게 녹였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정선군청 공무원을 거쳐 35살에 춘천시청 공무원이 되었다. 생활의 안정도 찾고 결혼도 했다. 연금이 나오는 20년만 딱 근무한다고 선언한 형은 정말로 맞춰 정년 퇴직을 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무원 연금 생활자가 되었다. 올해 칠순맞이로 6형제와 가족들이 파주 우리 집에서 모여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우리 6형제 중 ‘대기만성형 인생 반전’이다.

셋째형은(이주용,68세)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는데 유머 넘치는 말솜씨와 심플한 수업으로 중학교에서 인기 많은 선생님으로 활동했다. 대학시절에도 야간에 방범을 하면서 공부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근검 절약했다. 한 푼도 쪼개어 쓸만큼 알뜰한 형은 교사 정년퇴직 후에도 강릉과 임계를 생활터전으로 농사도 짓고, 닭도 키우고, 때론 기숙사 사감도 하고, 가끔은 기간제 교사도 하면서 알차고 부지런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는 우리 6형제의 ‘넘치는 에너자이저’다

넷째형은(이주산, 64세) 임학과를 졸업해 여러 직종에서 일을 하다가 다섯째 형과 함께 안산에서 약국을 운영했고, 지금은 아파트 관리소장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늦게 가정을 꾸려 조카가 고등학생으로 아마도 앞으로 5년 이상은 일을 해야 할 듯하다. 노후에도 일할 수 있는 자격증과 직업이 있으니 행복한 일이다. 사람 관리 잘 하는 형에게 관리 소장은 안성맞춤이어서 형네 아파트 주민은 문턱없이 소통한다고 듣는다.

그는 우리 6형제의 ‘따뜻한 메신저’다

다섯째형은(이주민, 62세) 약대를 졸업한 약사로 약국을 운영 중인데, 처음부터 뛰어난 약 제조 능력과 한약의 효능이 소문나면서 나날이 번창했다. 부모님의 첫 해외 나들이로 중국을 거쳐 백두산 여행을 네 분의 형수님과 함께 갈 수 있도록 비용을 감당했고, 매달 부모님께 용돈도 드렸다. 지금도 약국을 운영하지만 형수님 건강이 좋지 못해 늘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형은 늘 긍정적이고, 씩씩하다.

그는 우리 6형제의 ‘긍정 아이콘’이다.

막내인 나는(이주경, 60세) 유일하게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행운아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에 취직했는데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가 먼저 둘째형과 셋째형이 빌려준 돈을 합쳐서 500만 원 보증금으로 교습소를 차렸고, 후에 나도 합류했다. 원생들이 날마다, 달마다 늘어서 지금은 세 개의 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나는 우리 6형제의 ‘든든한 서포터’다

 

6형제 6아내, 사랑과 우애의 행복 공동체

바위안

우리 바위안 이씨 집안으로 시집온 형수들 자랑도 뻬놓을 수 없다. 며느리들의 고향은 강원도, 부산, 안동, 전주, 서울 그야말로 충청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왔다. 놀랍게도 그 흔한 동서 간 갈등도 한 번 없이 긴 세월을 지내오고 있다. 그래서 노심초사 6형제를 키워온 부모님은 며느리 자랑도 많았다.

개성 강한 우리 형제들과 몇 십 년을 무탈히 지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아이들들 잘 키워서 각자 자리에서 제몫을 하도록 성장시키고, 그들이 아이를 낳아 우리를 할아버지로 만들어 주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가 학원을 운영할 때는 학원이 잘 되라고 늘 기도해 주신 형수님들. 나에게는 돌아가신 어머님 한 분과 살아있는 다섯 분의 형수 어머님이 계신 셈이다.

막내인 나도 어느덧 환갑이 지났다. 느리게 갔으면 하는 시간이지만 시간은 빨리 흐른다.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주신 이 소중한 가족 공동체가 더 아름답게, 보기 좋게 나무면서 생활하기를 소망한다.

❝ 형님, 형수님 사랑합니다. 모두 건강하게 시니어로 인생 후반전을 잘 살아내는 우리 정선 바위안 6형제, 6아내이기를 소망합니다. ❞
 

6형제를 대신하여 막내 이주경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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