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기준, 의료급여에서도 철폐해야
가족도, 국가도 부양하지 않는 비수급 빈곤층 양산 부양의무자 기준에 수급자들 정신적 고통
[소비라이프/권유정 소비자기자] 빈곤사회연대가 10월 한 달간 ‘말하자, 기초법 20년’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1일로 시행 20년을 맞이했으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넓기 때문이다.
사각지대의 원인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손꼽힌다. 부양의무자제도는 기초법의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에서 수급권자 선정기준이 되는 제도이다. 기초법 급여 신청 본인의 소득 또는 재산이 선정기준에 부합해도 부양의무자가 존재하면 급여 수급이 불가능하다. 부양의무자의 존재가 이들이 부양을 받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수급 빈곤층’으로서 실제로 부양받지 못한 채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2019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 탈락의 이유로 ‘부양의무자의 소득 및 재산이 기준보다 많기 때문’이 가장 많았다. 2018년 1년 동안 기초법 급여 신청 경험이 있는 가구 중 수급 탈락한 가구를 조사한 결과, 생계급여에서 49.39%, 의료급여에서 51.10%의 가구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탈락했다.
주거와 교육 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됐고, 생계급여에서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철폐될 예정이다. 단, 부양의무자가 연 소득 1억 원이나 부동산 재산 9억 원을 초과할 경우는 예외다. 3가지 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미적용되고 있지만, 의료급여에서는 아직 존재한다. 지난 8월 제61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부양의무자가 기초연금 수급자일 때 한해서 의료급여 수급이 가능한 것으로 일부 개선됐을 뿐이다.
실질적 부양 여부의 문제와 더불어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 가구에 정신적 고통을 부여한다. 다음은 부양의무자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증 장애인이자 의료급여 수급자인 A 씨에게는 취업 전인 두 딸이 있다. 지금은 의료급여를 받고 있지만 두 딸이 일자리를 갖게 되면 부양의무자로 인정돼 급여를 받지 못한다. 딸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A 씨는 부양의무제도 폐지에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B 씨는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의료급여 수급을 통해 10년 넘게 매주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B 씨는 배우자와 소득 합산 시 어머니가 수급에서 탈락할 것 같아 걱정이다.
A 씨와 B 씨 가구는 중증 장애인 가구로서 일반 가구보다 더 많은 의료비가 필요하다. A 씨의 수급권이 끊기면 이제 일자리를 갖게 된 사회초년생 두 딸에게는 의료비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B 씨 어머니의 수급이 중단되면 갓 수급에서 벗어난 B 씨 부부가 어머니의 의료비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빈곤한 이들의 수급을 막고 괴로움과 죄책감을 주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한 목소리는 크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 박영아 변호사는 지난 29일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부양의무자 제도는 국가가 부양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일이라며 “더 이상 가족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빌미로 취약계층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에도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할 전망으로, 완화보다 철폐 요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