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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단풍에서 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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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단풍에서 길 찾기
  • 채희문 소설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 승인 2016.01.0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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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문 소설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지난 가을 책갈피에 눌러놓았던 단풍잎 두 장이 물기가 쏙 빠지고 나더니 오히려 더 붉어졌다.

언제라도 책 읽던 곳을 쉽게 찾아내기 위한 표지로서 마른 단풍잎 서표만한 것이 또 있을까 만은, 벌레 먹은 구멍 하나에 잎자루 하나 길게 뻗은 형상이 마치 눈 하나 달린 외발이 새가 노을에 비껴있는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 채희문 소설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가까운 문구점을 찾아, 단풍잎 위아래에 비닐판을 대고 고주파 열처리를 하고나서야 위태롭게 바삭거리던 단풍잎은 가까스로 서표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색실로 매듭지을 구멍을 위에 뚫어야 옳을지 아래쪽으로 뚫어야 옳을지, 이를테면 잎자루가 위로 향한 것이 예쁠지 혹은 펼친 손바닥처럼 잎사귀 끝이 위로 향한 것이 예쁠지 가늠하던 순간이었다.

아, 그렇구나. 마른 단풍잎 한 장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무수히 펼쳐져 있음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잎사귀에 물과 영양을 공급하던 잎맥은 얼핏 그물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자세히 볼수록 일정한 규칙을 준수하며 갈라져나가고 있었다.

제법 굵은 길이 위로 향하면서 둘로 갈리더니 그 길이 또 둘로 갈리고, 그 네 갈래 길이 또다시 여덟 갈래로 나뉘고…. 조선 선조임금 무렵의 세상도 이와 같았다, 중신 이준경(李浚慶)이 올린 상소문으로 인해 신하들이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면서부터 붕당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율곡’을 중심으로 한 매파는 필벌을 주장했고 ‘유성룡’을 필두로 한 비둘기파는 용서하자는 쪽이었는데 결국 그 주장의 합치점을 찾지 못하고 끝내 대립하다가 ‘서인’과 ‘동인’이라는 양 붕당으로 갈라지고야 만 것이다. 온건파로 칭해지는 동인 중에서도 강경한 쪽이 ‘북인’으로 갈라져나가고 그나마 온건한 쪽이 ‘남인’으로 갈라져나갔으니, 조상들이 부르짖던 명분과 실리가 영락없이 마른 단풍잎의 잎맥과 다를 바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아패, 각패, 목패 등 벼슬에 따라 차별화된 패를 차고도 모자라서 자기네 당파가 득세라도 하면 그 집안 아녀자들까지 치마폭을 넓히거나 쪽을 크게 짓도록 하여 세력가로서의 티를 드러내곤 했으니 이왕에 뜻이 갈라지면 두 세력은 철천지원수로 변할 지경이었다. 망설이다가 색실매듭 지을 구멍을 아래로 내고자하여 단풍잎 위아래를 뒤집어보게 되었다.

그러자 문득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여덟 갈래로 나뉘었던 길이 합쳐져 네 갈래 길이 되고, 네 갈래 길이 다시 둘로 합쳐지고… 그러면서 내재된 상처와 갈등이 치유되고, 그토록 어려운 줄로만 알았던 상생의 길로 들어서고, 그리하여 공존의 문화를 이루며 결국 한 줄기로 뻗어나가 나무뿌리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서로 나뉘어 있을 때엔 각자 눈 하나 달린 외발이 새의 형상이던 두 장의 은행잎이, 서로를 품에 안은 듯이 합쳐놓자 드디어 눈과 발을 제대로 갖춘 채 찬연히 붉은 날개를 편 웅장한 새가 되어 하늘 높이 비상하는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통합과 화합도 별 게 아니다. 열여섯 줄기로, 여덟 줄기로 나뉘었던 뜻이 합치고 모여 네 갈래로, 두 갈래로 통하다가 드디어 한 줄기로 모이면 그뿐인 것이다.

결국 실천이 중요할 뿐인데… 단풍잎 위아래를 뒤집듯 생각하고, 반쪽짜리 비익조를 합치듯 부둥켜 안아보자는 것이다. 역오일쇼크가 왔다고 한다. 미국 제로금리 시대도 마감되고 12조 달러가 넘게 풀린 돈이 빠져나갈 위기로 인해 신흥국들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수출타격과 글로벌 금융이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확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가뜩이나 혼란한 시기에 비익조처럼 반쪽으로 갈라져서야 어찌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문화적인 가치를 위해서나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나 화합의 실현이 중요한 시점이다. 모름지기 단풍잎을 뒤집어보며 현명하게 길을 찾아내야 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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