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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할증폭탄 ‘건수제’… 소비자는 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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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할증폭탄 ‘건수제’… 소비자는 봉인가?
  • 김상돈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이사
  • 승인 2014.09.22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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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 / 김상돈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이사] 옛말에 푸줏간 앞에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을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 한다. 소비자에게 양고기를 파는 척 하면서 실제로 주는 것은 개고기란 뜻이다. 참으로 상도의 상 옳지 않는 일이다. 무릇 사람 살아가는 일에 신의가 우선이고 소비자들을 우롱한다면 믿음을 잃게 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신의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번 자동차 보험제도 할인할증 변경안이 그렇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20일 자동차 보험제도를 개선한다면서 25년간 운영돼 왔던 ‘점수제’를 ‘건수제’로 변경했다. 다수 소비자들에게 인하혜택을 주기 위해 바꾸게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점수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현행 점수제가 후진적 보험제도임을 은근히 강조했다.

 ▲김상돈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이사
금감원이나 손보사는 자동차사고 상황이 크게 변화해 제도를 바꾼다고 한다. 그럴수도 있다고 하자. 그런데 왜 소비자들에게 보험료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언론의 지적에 귀를 닫는지 아이러니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50만원 이상의 물적 사고는 매 건당 3등급(최초 1회는 2등급, 연간 최대 9등급) 할증이 되고, 보험료가 21%(연간 최고 62%) 인상이 된다면, 사고자들은 보험처리를 스스로 기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차량을 운행할 수 있을 정도의 경미한 사고라면 아예 신고조차 않을 것이다. 이런 미수리 사고 차량의 안전 문제도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경미한 사고들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보다 음성화 될 수 밖에 없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모든 차량의 정비이력 전산화 작업을 마친 상태다. 건수제의 시행으로 차량 사고 자체가 숨겨지거나 싼 값의 불법업소 이용을 조장하는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럴 경우 건수제는 정부의 정책결과를 뒤집어엎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보험제도는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고 소비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큰 것이 사실이다. 제도 실시에 따른 가변성을 예측한다는 것은 일반 소비자들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손보사들이 아전인수격 통계자료를 마음대로 재단해도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선량한 소비자들은 그들의 논리에 그저 손을 놓고 바라볼 뿐이다.

손보사들은 건수제 도입 명분으로 사고를 내지 않는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함이라 밝혔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사람의 의지대로 사고를 안낼 수만 있다면 보험은 왜 필요한가? 보험은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사고를 위한 준비행위라고 볼 때,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또 한 가지. 사고 다발자들에게 부담을 더 물리겠다는 것이다. 사고 다발자들은 누구인가? 차량운행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사고에 훨씬 노출이 많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건수제는 생계형 운전자들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보험은 신뢰가 전제돼야 하며,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소비자의 선택이다. 왜 손보사들과 보험금융 당국은 솔직하지 못한가? 손보사의 방만한 경영으로 채산성이 악화돼 서민들에게 손을 내밀게 됐다고 하는 게 차라리 더 떳떳할지도 모른다. 양두구육(羊頭狗肉)으로 그나마 남은 신뢰조차 잃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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