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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안보’(Human Security)로 ‘안전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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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안보’(Human Security)로 ‘안전 사회’를
  • 민병두
  • 승인 2014.04.2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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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경우 ‘돌진적 성장’(rush to growth)으로 인한 ‘다중 위험사회’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현대사회를 ‘활화산 위에 선 문명’이라고 하지만 상시적, 불가측적 위험이 다른 어떤 사회나 국가보다 심각하다. 단기간의 압축 산업화로 인하여 고도의 과학기술과 저급한 사회체계가 결합되어 있어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병존’이라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위험사회론’을 설파한 울리히 벡은 한국이 성찰 없는 근대성의 과잉으로 인해 초위험사회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1970년 3월 와우아파트 붕괴에서부터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1993년 부산 구포 열차전복 사고, 서해 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1997년 괌 비행기 추락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사고, 인천 호프집 화재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 2014년 부산외대 리조트 붕괴사고, 진도 세월호 침몰사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형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대형 사고와 위험을 겪으면서도 철저한 자기반성 없이 임시방편으로 그 때마다 안일하게 땜질식으로 대응해왔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사후약방문으로 각종 안전대책을 발표했지만, 각종 백서는 마치 하얗게 잊어버리기 위해 만들었던 것처럼 늘 잊혀졌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단군 이래 5천년 적폐의 결과물’이라고 원인을 돌렸던 것을 최근에는 ‘정부 수립 이후 60년 적폐의 산물’이라고 기간만 조정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제 근본을 개조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9.11 테러 이전과 9.11 테러 이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고 한다. 우리도 4.16 세월호 참사 이전과 4.16 세월호 참사 이후가 완전히 달라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는 수많은 생명을 잃게 한 자괴감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을 것이라는 열패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헌법 34조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명시한 헌법 119조가 경제개혁의 근거가 되었듯이 헌법 34조 6항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 그리고 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국가운영시스템의 근본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러한 헌법적 가치위에서 국가시스템을 점검하고 개혁해야 한다. 법과 제도, 그리고 각종 정책들이 헌법적 가치 위에 있는지, 규제완화라는 민간의 이해에 기초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인간안보’(human security)라는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은 전쟁이나 분쟁 등 물리적 폭력 뿐 아니라 기아 빈곤 환경파괴 글로벌경제위기 정치억압 등으로부터 개개인의 안전문제가 중요하다고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정부가 예방적인 사회개발, 사회안전망의 확충 등 폭넓은 처방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적자원이 유일한 자원인 우리나라가 인적자원을 도구시한 것은 아닌지 근본적 성찰을 하면서 ‘도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안보’라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해야 한다. 고도성장과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평화통일도 ‘인간안보’가 선행되어야 이 땅을 사는 개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셋째,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시스템 개혁위원회’를 구성하여 민간과 전문가가 중심이 되고 정치권이 함께 참여해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이 신뢰를 상실했지만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라는 점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관료는 관업유착(官業癒着)과 관경유착(官經癒着)의 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개혁의 주체로 적당하지 않다.  

넷째, 근본적인 변화, 과거와의 완전한 차단을 위해서는 ‘국가시스템 개혁위원회’가 상시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1년에 걸쳐서 이번 사고를 진단하고, 국가 도처에 있을 모든 위험에 대해서 사회 각 단위마다 점검하고 토론하고 시뮬레이션하고 대책을 만들어 함께 공유해야 한다. 전국의 학교, 주민센터, 직장 및 공장, 아파트입주자대표자회의 등 모든 단위에서 토론을 공유하고 국가적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처럼 국회에서 한두달 국정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식으로는 근본개조가 어렵다. 

다섯째, 국민들이 가진 ‘긍정적 에너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난사태가 발생했을 때 금 모으기를 했던 국민이다. 기름유출 사건 때 1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저력을 가진 나라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선장은 책임을 피하거나 도주를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국민들이 가진 ‘긍정적 에너지’의 잠재력이 활성화되고 제도로 정착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인간을 중시여기는’, 하나하나의 개인과 인간을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국가로 전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여섯째, 천안함 사건이 났을 때도 장교들은 살아남았고 장병들만 희생되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 때 역시도 선장은 도주하고, 그리고 정부기관들은 모두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이러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위기 시에 정부와 공공이 말단에서부터 최고 책임자 수준까지 이처럼 협업이 안되고, 상층부 부터 도주한다는 불신사회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전쟁이 나면 기득권층부터 도망할 것이라는 뿌리 깊은 불신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종 사고 때마다 국민들은 희생하고 헌신하는데, 지도층은 제 살길만 찾는다는 지독한 사회의 분열은 국민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조성한 것이다. 그 권력을 형성하는 기득권층의 의식과 문화를 해체하는 정도의 혁명적 대수술을 해야 한다.  

일곱째, 청와대와 권력기관, 정부의 인식전환과 전면개편은 불가피하다. 민심수습이나 선거지형변화 등 기존의 정치게임, 정치문법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게 되면 비극을 잊는 짧은 기억력은 다시 작동되고 해법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깨알같이 나열하고 적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사회, 대통령이 1인 군주처럼 행동하는 사회에서는 ‘시스템’이 가동될 수 없다. 1인 군주의 절대적 병풍 아래서 보호받았던 그 많은 권력기관의 장들이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무서워하는 문화의 교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당연히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대통령의 사과의 내용과 정도는 국정운영스타일을 바꾸겠다는 반성과 의지의 표현이자 실천이어야 한다. 

여덟째, 선장을 비롯한 몇몇 개인과 해운 회사 등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서 검찰이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국민적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한다면 잘못된 발상이다. 그래서는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구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근본개조를 해낼 수 없다. 권력보다 약한 자를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 스스로가 공공의 장애물은 아니었는지 겸허하게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대한민국의 근본개조가 가능하다.  

이런 변화와 개혁은 이제 ‘소수 상층부’와 ‘관료’들이 주도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국민을 개혁의 중심주체로 세울 때, 그럴 때만이 또 다시 ‘잊혀지는 백서’가 아닌, 대한민국의 ‘근본을 바꾸는’ 첫 출발이 될 수 있다. 

사람 하나로 일으켜 세운 나라가 사람을 돈벌이의 도구이자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더 이상의 전진이나 도약은 불가능하다. 사람을 중시하고 인명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생명권과 안전권, 건강권을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인간안보’의 사회로 가기 위한 근본적 전환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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