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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상파뉴 시장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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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상파뉴 시장의 형성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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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오늘날 도시에서 물건을 사려면 대형마트나 시장에 방문하는 게 일반적이다. 인구가 적은 시골에 가면 시장이 매일 열리지 않고 5일이나 7일 장이 선다. 

말할 필요도 없이 시장은 재화의 생산이나 대규모 교역이 발생하기 위한 주춧돌 역할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고라 광장에서 시장이 열렸다. 광장에 상거래가 있던 스토아도 있었다.
 
십자군원정은 로마시대이후 잠잠해졌던 이탈리아반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비잔틴(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로 떠나기 위해 베네치아를 비롯한 항구도시에서 배를 타고 떠나야하다 보니 해상운송이 늘었다. 전쟁을 위해 필요한 물자 교역도 이탈리아의 항구도시에서 이루어졌다. 

자연스럽게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방무역으로 얻은 부가 이탈리아에 쌓였고 도시들은 독자적으로 성장한다. 잉글랜드의 양모를 사들여 직물을 만들고 주변 지역에 팔아 차익을 남겼던 플랑드르지역은 유럽의 북부를 중심으로 부를 쓸어 담았다. 이들 모두 교역을 통해 이윤을 남겼을 만큼 교역은 돈과 부를 모으는 수단이었다. 
 
12~14세기에 걸쳐 도시로의 인구이동에 따른 도시 인구증가와 성장은 상거래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이는 정기적인 시장이 들어서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재화와 부가 모이도록 시장을 형성해 새로운 부를 창출했던 곳이 있다. 우리에게 샴페인 도시로 알려진 ‘샹파뉴(Champagne)’다. 

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는 지중해 너머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위험했다. 자연스럽게 육로교통이 발달했다. 샹파뉴는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사이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들의 사이의 상인들이 오가는 길목이었고 이곳에 정기시장이 형성된다. 

샹파뉴는 다른 지역과 달리 백작이 다스리는 백국이었지만 앙리 2세의 지원 아래 상파뉴 백작의 통치가 이뤄졌다. 상거래를 위해 모여드는 상인의 신체와 재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1174년부터 샹파뉴 백작은 감독관들을 임명했다. 이들이 치안을 책임질 수 있도록 병력과 행정력을 지원하고 사법권까지 주어 분쟁을 조정하도록 했다.   

새해 1월 2일부터 라니에서 첫 번째 시장이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바르-쉬르-오브에서 정기시(定期市)가 열린다. 프로뱅 정기시가 45일간, 트루아 여름 정기시가 6월 말이나 7월 첫 주에 열려 9월 14일까지, 다시 프로뱅 정기시와 트루아 겨울 정기시가 12월 중순까지 열리며 샹파뉴에서는 거의 1년 내내 정기시가 열려 상거래가 이뤄진다. 가톨릭의 축일로 인해 약간씩 변동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정기시가 한 번 열릴 때 6주에서 두 달 정도 이어졌다. 

재화와 돈이 오가다 보니 나라별로 쓰는 화폐의 교환이 필요했다. 이에 환전소를 설치하고 화폐를 교환하도록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실제 돈이 사용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많은 양의 교역을 위해서는 많은 양의 금이나 은이 필요했다. 

이탈리아에서 금과 은을 가지고 알프스산맥을 넘는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초래한다. 무거운 현금을 들고 육로로의 장거리 이동도 힘들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거운 현금 대신 환어음을 사용하게 됐고 이를 통한 환거래가 시작됐다. 

교역중심이던 12세기가 지나고 13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환어음과 환거래 같은 신용과 환전에 관련된 업무의 중요도가 높아져 상퍄뉴는 환거래의 중심지로도 알려지게 된다. 그로인해 정기시의 성격도 조금 변하지만 그 기반인 상거래활동은 여전히 탄탄했다. 

14세기까지 상파뉴의 전성기가 이어졌다. 이후 상파뉴는 항해술의 발달로 플랑드르와의 교역로 개척, 프랑스 왕실의 중과세와 이탈리아 상인의 활동 제한, 이탈리아 직물산업의 발달 같은 요인들이 생기기 전까지 남부와 북부를 잇는 중개 거래소 역할로 커다란 부를 일구게 된다. 이 모든 게 시대적인 상황을 읽을 줄 알았던 상파뉴 백작의 거시적인 시야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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