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
상태바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
  • 홍한비 소비자기자
  • 승인 2021.08.18 16:0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행된 지 8년...
임산부 10명 중 9명은 ‘임산부 배려석 이용에 불편’
임산부 배려석에 붙어있는 임산부배려엠블럼. /사진=보건복지부
임산부 배려석에 붙어있는 임산부배려 엠블럼. /사진=보건복지부

[소비라이프/홍한비 소비자기자] 지하철에는 다른 좌석과 확연히 구별되는 분홍색 좌석이 있다. 거의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여러 사람이 그 좌석을 이용하는 것을 목격한다. 술에 취한 아저씨,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줌마, 핸드폰만 쳐다보는 학생 등등.  

한번은 임산부 배려석 옆좌석에 앉은 날이 있었다. 임산부 배려석에는 한 청년이 앉아있었는데, 가방에 임산부 배지를 달고 배가 많이 부른 여성분이 앞에 섰다. 누가봐도 임산부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청년은 에어팟으로 귀를 막은 채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민망함에 대신 자리를 양보했지만 미안해하던 그녀의 모습도, 임산부 배려석에서 핸드폰에 열중하던 청년의 모습도 한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양심’으로 운영되는 임산부 배려석, 배려받지 못하는 임산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2013년부터 지하철에 노약자석과는 별도로 임산부 배려석을 지정하고 있다. 현재 임산부 배려석은 그 명칭이 임산부 지정석이 아니라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들의 자발적 양심과 선심에 따라 운영한다. 즉 캠페인의 성격을 띤다. 시행된 지 약 8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운영과 제도로 인해 임산부 배려석은 여전히 논란 속에 있다. 

2018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7년 출산한 경험이 있는 4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시행한 결과, 10명 중 9명이 ‘임산부 배려석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중 절반 이상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지금처럼 시민들의 배려를 권고하는 정도의 운영으로는 캠페인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특히 배가 많이 부르지 않은 초기 임산부들은 더욱 배려받기 어렵다. 2020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 1500명과 일반인 15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산부의 54.1%는 일상생활에서 타인으로부터 ‘배려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배려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4.3%는 ‘배가 나오지 않아 임산부인지 티가 나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초기 임산부는 임산부임을 알아보기 어렵고, 임산부가 와도 임산부 배려석을 양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보니 임산부 배려석을 계속 비워둬야 하는지 혹은 임산부가 오면 비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운영방식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를 위해 비워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 운영방식이 시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을뿐더러, 임신하지 않은 사람이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했을 경우 강제성을 띤 제재는 딱히 없다. 모호한 비강제성으로 인해 임산부 배려석은 늘 ‘뜨거운 감자’다. 

2019년 페이스북 페이지 ’군대나무숲‘에는 ’휴가 때 임산부석에 앉았다가 진술서 썼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군인인 작성자는 휴가를 나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는데, 여러 시민이 그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국방부에 신고했고 그는 결국 진술서까지 쓰게 되었다. 누리꾼들은 ’군인이면 그래도 건강하고 튼튼한 편인데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뒀어야 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군인들인데 주위에 임산부가 없었다면 좀 앉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등의 상반된 여론이 잇따랐다. / 사진=페이스북 페이지 '군대나무숲'
2019년 페이스북 페이지 ’군대나무숲‘에는 ’휴가 때 임산부석에 앉았다가 진술서 썼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군인인 작성자는 휴가를 나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는데, 여러 시민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국방부에 신고했고 그는 결국 진술서까지 쓰게 됐다. 누리꾼들은 ’군인이면 그래도 건강하고 튼튼한 편인데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뒀어야 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군인들인데 주위에 임산부가 없었다면 좀 앉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등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사진=페이스북 페이지 ‘군대나무숲’

 

강제성을 띤 임산부 전용석은 어때?

2019년 서울기관공사에서 서울 지하철 이용 시민 61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산부석에 앉은 이유에 81.5%가 ‘비워져 있어서’와 ‘강제가 아닌 배려석이어서’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임산부 배지를 QR코드처럼 인증해야 앉을 수 있는 시스템 등으로 강제성을 마련하자’ 등 임산부 전용석으로 개편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산부 전용석으로 바꾸자는 요구에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만큼 임산부 배려석 비워두기를 강제하는 것은 어렵고 지속적인 인식 개선 활동으로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답변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그런 논리라면, 주차장도 돈을 지불하고 이용하는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하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냐’, ‘양심만으로 운영하기엔 임산부에 대한 시민의식이 아직 부족하다’ 등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배려는 강요할 수 없다’, ‘출퇴근 시간의 이용 승객들도 모두 지쳐있는 상태 아니냐’, ‘차라리 택시비 지원을 확대하는 게 모두를 위해 낫다’ 등 엇갈린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성별갈등으로 번지는 임산부 배려석 논란

임산부 배려석 논란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다는 내용의 민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후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산부석 관련 민원은 2015년 13건에서 2018년 2만 7555건으로 증가했다. 2018년 1월부터 11월까지 하루 평균 80건이 넘는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이 들어온 셈이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은 어느덧 성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일간베스트, 보배드림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성차별적 혐오 글과 댓글이 수없이 떠돌고 있다. 일간베스트에서는 남성들이 일부러 임산부석에 앉아 인증하는 ‘임산부 배려석 인증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리 안 비켜줄 거다”, “임산부가 비켜주라고 했는데 무시했다” 등 임산부를 조롱하고 심한 경우 성희롱까지 이어진다. 작년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임산부를 향해 한 50대 남성이 “앉지 말라고 써있는데 왜 앉아있냐”, “여성들은 다 죽어야 한다” 등의 폭언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온라인 사이트 일간베스트에 올라와있는 임산부 배려석 이용 인증 글들.
온라인 사이트 일간베스트에 올라와있는 임산부 배려석 이용 인증 글들./사진=일간베스트

이에 맞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남성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만 하면 신고하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기관사는 SNS에 ”요즘 일하는데 너무나도 힘들다. 임산부 배려석에 남자만 앉았다 하면 민원을 넣는 이상한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CCTV로 보면 다른 자리도 많이 있는데 남자가 그 자리에 앉았다 하면 폭탄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갑자기 늘었다”며, ”듣자 하니 일부 여성 사이트들의 단체 문자 활동이라고 하던데, 정말 화가 난다.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자리인 건 사실이지만, 배려석이지 의무석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함께 올린 사진에는 ‘2717호에 남성분이 앉아있어 임산부가 앉기 힘들다. 방송 부탁드린다’ ‘2717호에 남성분이 앉은 지 7분이 지났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다’ 등의 잇따른 민원 내용이 나타나 있다. 기관사의 업무에 차질이 있을 만큼 대량의 신고가 이뤄지면서, 그저 신고를 위한 신고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한 기관사가 자신의 SNS에 올린 고충 토로 글./사진=인스타그램

이젠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이처럼 모호한 정책 운용은 효과를 못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 간의 갈등이 심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한 임산부에 대한 인식 개선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캠페인 성격의 임산부 배려석 실태를 보면 분명 한 단계 나아간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좌석을 비워두라는 권고만으로는 제대로 된 운영에 차질이 있다. 강제성을 부여해 임산부들만 이용할 수 있게 하거나, 공식적으로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하되 임산부가 오면 비워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명확한 방법을 찾음으로써 불필요한 논쟁과 갈등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니들이좋아하는비비빅 2022-12-14 08:04:39
여자들 지들인생살고싶어서 임신도안하는데 임산부석이 왜필요한지모르겟다.
임신해서 앞에서있으면 알아서 비켜주는게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