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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기사님, 조용히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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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기사님, 조용히 가고 싶어요.”
  • 이은비 소비자기자
  • 승인 2021.08.0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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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감 쌓인 사회, 언택트를 향해 가다
언제부턴가 택시 기사님의 수다가 불편해졌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늦은 밤엔 종종 택시를 타고 귀가한다. 피곤한 몸을 끌고 나와 저 멀리 다가오는 택시를 볼 때면, 마음속으로 한 가지 주문을 왼다. “제발 말 많은 기사님 안 걸리게 해주세요” 

택시를 타면 가끔 수다스러운 택시 기사가 있다. 정치부터 경제, 사회, 과거사까지 대화 주제도 다양하다. 한번 운을 떼기 시작하면 내릴 때까지 이야기보따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 대화가 종종 불편하게 느껴졌다. 대화 주제를 정하는 것은 언제나 먼저 운을 뗀 택시 기사 몫이었고, 그 주제가 내 관심사인지 아닌지는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둘만 남겨진 좁은 공간에서 나는 일방적으로 청자가 돼야만 했다.

출처 : Pixabay
20~50대 택시 이용고객 14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기사와의 불필요한 대화’가 가장 불편하다고 답했다.

“말 걸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불과 몇 주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택시 기사는 목적지를 물은 후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아가씨 키가 몇이에요?” 택시를 잡으려 서 있는 동안 내 큰 키가 눈에 띄었나 보다. 키가 몇인지 알게 된 그는 한 가지 조언을 했다. “키 큰 여자는 자세가 중요해요. 여자가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면 어딜가나 환영받지만, 자세가 구부정하면 키 작은 여자만도 못한 거야” 정신이 아득해졌다. 환영받고 싶은 마음도, 키 작은 여성을 이길 마음도 없었지만, 굳이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아, 네…” 하며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그 뒤로도 그는 키가 크고 자세가 구부정한 여성을 본 일화를 구구절절 늘어놨다.

겨우 대답한 한 마디가 성의 있는 대답으로 들렸나 보다. 그는 “요즘 말이야, 젊은 여자분들이 택시기사 신고를 그렇게 많이 해요”라며 다시 운을 뗐다.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나에게 그는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다들 그러는 건 아니에요. 신고하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공통점이 있더라고. 손님처럼 호리호리한 분들은 안 그러는데 덩치가 큰 여자분들이 그렇게 민원을 자주 넣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그가 민원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은 사실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설명하기 위해 운전 중 고개를 뒤로 돌려 나와 눈을 맞춘 채 이야기를 하던 택시 기사도 있었다. 일방적인 걸 넘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대화 방식은 상대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든다.

“제가 오늘 너무 피곤한데 조용히 가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나이가 많은 ‘웃어른’인 그에게 “말 걸지 마세요”라는 의사 표현을 하는 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데다,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일방적인 대화를 거절하지 못해 불편한 대답을 이어나간 경험은 흔했다. 

비싼 가격에도 타다를 타는 이유는?
플랫폼이 대신 전해주는 고객 속마음

지난해 오픈서베이에서 20~50대 택시 이용고객 14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기사와의 불필요한 대화’가 택시 이용 시 가장 불편하다(38%)고 답했다. 이어 ‘과속·난폭운전(35.4%)’과 ‘승차 거부(34.2%)’ 등을 불편사항으로 꼽았다.

그런데 이제는 걱정을 좀 덜었다. 손님이 직접 말하기 어려운 요청사항을 플랫폼이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 호출 앱인 ‘T맵 택시’는 최근 손님 요청사항을 팝업창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택시를 호출하면 ‘기사님 부탁드려요’라는 팝업창이 뜨고 이용자는 ‘조용히 가고 싶어요’와 ‘천천히 가더라도 과속, 급정거 없이’ 등 두 가지 요청사항을 선택할 수 있다. 

T맵의 요청 기능에 대해 소비자들은 “직접 말하기 어려웠는데 요청사항에서 선택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정말 필요했던 기능이다”와 같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택시/차량 호출 서비스별 장점 비교/자료=오픈서베이

현재는 여객운수법에 의해 운영이 제한된 ‘타다’가 비교적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타다 기사가 되려면 반드시 기사 교육을 거쳐야 하며, 기사는 엄격한 규정에 따라 운행한다. 기사는 손님이 차량에 탑승하면 안전벨트 착용을 요청한 후 실내 온도는 괜찮은지, 목적지까지 원하는 경로가 있는지, 불편 사항은 없는지 등을 묻고 그 외에 불필요한 대화는 삼간다. 서비스하는 동안 차량 내부의 환경이 온전히 손님에 맞춰 제공된다. 

오픈서베이가 2020년 3월 내놓은 자료(모빌리티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택시/차량 호출 서비스별 장점을 조사한 결과 이용자가 꼽은 타다 서비스의 장점은 ‘운전기사가 친절함’이 44.7%로 가장 많은 응답을 얻었으며, ‘차량 실내가 깨끗하고 잘 관리됨(38.7)’,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됨(29.1%)’ 순이었다. 설문 결과를 분석해 보면 이용자들은 타다 탑승 후 서비스 측면에서 높은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존 택시 이용에서 불편했던 부분을 보완해 편안한 탑승 경험을 제공한 것이 타다의 차별화 전략이었던 것이다.

비대면 사회, 코로나로 가속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대화로 피로감을 주는 택시를 꺼리는 승객이 늘어난 것과 같이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아 두는 강매 행위가 만연했던 동대문 시장을 찾는 발길도 줄어들었다. 일명 ‘도를 믿으세요’라고 불리는 사이비 종교 전파 행위가 만연해진 후로는 모르는 이가 길을 묻기만 해도 경계심을 갖게 됐다. 나아가 1인 여성 가구를 대상으로 한 표적 범죄가 발생하자 택배를 직접 수령하는 등 비대면의 욕구는 갈수록 커져왔다.   

상대의 지나친 관심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상대가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을 의식하는 삶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점차 ‘우리’ 대신 ‘내’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의지가 비대면에 대한 욕구를 강화한다. 

소비자의 욕구는 시장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IT 기술의 발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플랫폼은 수다스럽지 않은 택시를 등장시켰고, 쇼핑은 온라인으로 대체됐으며, 점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점포 비율도 갈수록 늘고 있다.  

서서히 드러나던 비대면 욕구는 코로나라는 위급한 상황을 맞아 급속도로 전개됐다. 감염병이라는 특수성으로 개인은 타인과 접촉을 최소화할 방법을 빠르게 찾아냈고 비대면은 이제 우리 삶 전반에 걸쳐 필수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비대면이 주는 간접성은 자유로운 선택을 도왔고,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자 효율성이 증대됐다. 꼭 필요한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현대적인’ 서비스가 됐다.

지난 2016년 등장해 비대면 사회의 시작을 알린 배달앱 서비스는 코로나 시대를 맞으며 한 단계 진화했다. 문을 열고 음식을 건네 받는 일조차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는 주문 시 ‘문 앞에 두고 벨 눌러주세요’, ‘문 앞에 놓고 문자 주세요’와 같은 요청사항을 한 번 터치하면 기사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음식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됐다. 

택배도 비대면으로 받아보는 것이 원칙이 됐다. 택배 기사의 입장에서는 물건을 직접 건네주는 수고를 덜어 일 처리가 빨라지고, 소비자는 기사와 대면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드는 데다 택배 도착 시각에 맞춰 스케줄을 비울 필요가 없으니 편리하다.

이제는 비대면 배달을 넘어 ‘배송 로봇’도 등장했다. 배달의민족은 지난달 28일부터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 배달 로봇 ‘딜리타워’ 3대를 배치했다. 라이더가 아파트 1층에서 로봇에게 음식을 전달하면 로봇이 공동현관을 열고 고객의 문 앞에 찾아가 배달을 완료한다. 고객은 비대면이라 안전하고, 라이더는 배달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대면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어느샌가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한 비대면의 영역에 적응해 나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대면이 주는 간접성은 자유로운 선택을 도왔고,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자 효율성이 증대됐다. 이제 사람들은 이 방식이 생각보다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을 통해 전달되는 온기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사라져가고 꼭 필요한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현대적인’ 서비스가 됐다. 불필요한 것은 잘라내고, 빠르고 간단하게 진행되는 프로세스가 정석이 됐다. 앞으로도 비대면 서비스는 가속화 되고 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다. 느슨하지만 필요에 따라 접속하는 관계가 대세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이은비 소비자 기자 dldmsql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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