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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는 정말 美지역 축제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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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는 정말 美지역 축제가 됐나?
  • 이은비 소비자기자
  • 승인 2021.02.0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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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작품상 후보 지명 불발… 또다시 지펴진 인종차별 논란
‘외국어 영화’로 분류된 가장 미국적인 영화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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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기자/이은비]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지명됐다. 그러나 ‘미나리’를 작품상 후보가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린 골든글로브의 이 같은 결정에 미국 영화제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에서 3일(현지 시간)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 후보작을 발표하며 영화 ’미나리’를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 과테말라-프랑스의 '라 로로나', 이탈리아 '라이프 어헤드'와 함께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데에 이어 아카데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영화 ‘미나리’가 기대와는 달리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그쳤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미나리’는 미국 영화사인 플랜 B가 제작했으며 작품을 연출한 정이삭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스티븐 연 또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후보작 명단의 출신 국가명에도 ‘미국’이라 쓰이는 명백한 미국 영화다. 그러나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는 골든글로브의 규정에 따라 대사의 대부분이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는 ‘미나리’는 외국어 영화로 분류돼 작품상 수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영화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1980년대를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며 미국 아칸소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정착 생활이 펼쳐진다. 가족 간의 사랑과 개척 정신을 독특하게 담아 낸 ‘미나리’는 4일까지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및 관객상, 미국영화연구소 올해의 영화상 등 미국 내 영화상을 59개나 휩쓸며 골든글로브 작품상 시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된 바 있다.

배우 윤여정은 극 중 할머니 순자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20여 개의 상을 받았다. 이에 여우조연상 후보로 기대됐으나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며 현지 언론의 비판이 더해졌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골든글로브의 여우조연상 부문은 1957년 이후로 아시아계 수상자가 한 번도 나오지 못했고, 이번에도 5명의 백인 배우가 후보로 자리했다.

미국 매체에서도 영화 ‘미나리’의 후보 지명 불발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미나리' 출연진은 배우 후보 지명도 받을 만했는데 하나도 받지 못했다"라며 골든글로브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작품상이나 각본상에 올리지 않은 것은 나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LA타임스는 “‘미나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골든글로브 규정보다 더 낫게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라며 비판했다.

많은 미국 내 아시아계 영화인들에게도 공분을 샀다. 중국계 캐나다 배우 시무 리우는 자신의 SNS를 통해 “’미나리’는 한 이민자 가족이 밑바닥부터 삶을 일궈내는 아름다운 스토리”라며 “무엇이 이보다 더 미국다울 수 있을까?”라는 글을 남겼다.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 감독 또한 자신의 SNS에서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를 본 적 없다”라며 “미국을 오로지 영어 사용 여부로 특정 짓는 구식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는 규정에 대해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녀석들(2009)’의 경우, 대사 중 영어 비중이 30% 정도이지만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어 규정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하나의 규정을 두고 인종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됐다며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으로 이어졌다.

한편 "한국 영화는 지난 20년 동안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왜 단 한 작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했냐"는 미국 매체의 질문에 대해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닌 로컬(지역적)이니까"이라고 답변한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가 회자되고 있다. 이 같은 발언은 아카데미가 다양성을 외면하고 미국만의 축제가 되어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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