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지구를 떠도는 부(富)]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상태바
[지구를 떠도는 부(富)]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14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르타고가 로마를 견제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시칠리아로 보내면서 ‘포에니 전쟁’ 시작
승리한 로마는 시칠리아섬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고 막대한 전쟁배상금 청구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대왕은 인도에 이르는 제국을 만들었지만, 제국의 기초가 다져지기도 전에 죽다 보니 제국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분열된 제국에서 내분이 가속화되면서 힘의 공백이 발생한다. 그사이 신생국이었던 로마는 차분하게 내부의 결속을 다지며 세력을 키워 반도의 중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반도를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뗀 로마는 카르타고와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로스 전쟁’ 때 일시적인 군사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도 했다. 로마와 남부의 그리스식민지 타란툼과의 사소한 다툼에서 타란툼이 에페리로스의 왕인 피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시작된 전쟁에서 두 나라는 그리스의 식민도시들과 피로스의 세력을 상대하게 된다. ‘피로스의 승리’라는 고사를 남긴 전쟁에서 로마와 카르타고가 승리하면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의 80%를 차지했고 로마는 남부 이탈리아 지역을 차지하면서 카르타고와 맞닿게 된다.
 
시칠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 시라쿠사에서 용병으로 있던 라틴계 출신 마메르티니는 그리스 식민도시 메사나의 주민들의 배려로 식량과 거처를 제공받았다. 떠돌이 상황을 그만두고 싶었던 용병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메사나를 야밤에 기습해 남성은 죽이고 여성은 용병끼리 나눠 가진다. 

마메르티니는 메사나를 중심으로 주변 도시들에 노략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시라쿠사의 왕인 히에론 2세가 이들을 토벌하면서 세력이 약해진 마메르티니는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다. 로마는 이들의 만행을 알기에 도움을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들이 카르타고에도 도움을 요청한 사실을 알고 카르타고가 시칠리아 전체를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돕기로 한다.
 
시칠리아섬은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면서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해상교역의 지리적 요충지였다. 당시 섬의 80% 이상이 카르타고의 영향력 아래 있었지만, 지리적으로는 로마와 훨씬 더 가까웠다. 카르타고가 섬 전체를 장악하게 되면 로마의 남부지역 영토가 카르타고에 노출되면서 치명적인 위험에 놓일 수 있어 예민한 부분이었다.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와 연합해서 로마군단을 맞이했지만, 전투력에서 많이 뒤져 결국 로마에 항복한다. 이때 카르타고가 로마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시칠리아로 보내면서 100여 년간 이어지는 ‘포에니 전쟁’이 시작된다. 
 
로마가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하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해상교역을 주도하고 있던 카르타고와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카르타고는 해상교역로로 부를 선점하고 있었고 로마는 시칠리아의 지정학적 위치 외에 카르타고가 누리는 부에 관심이 높았다.
 
로마는 시민들이 자원해서 입대한 군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카르타고는 용병이 주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결속력은 전투력에서뿐만 아니라 전쟁의 지속력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시민들의 자원입대와 기부는 무너진 군단과 함대를 다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지속력에서 차원이 달랐던 클래스(?)를 보여준 로마는 몇 차례 큰 패배에도 불구하고 결국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했다. 로마는 시칠리아섬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고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청구했다. 더불어 사르데냐를 중립지역으로 만들어 카르타고가 로마를 공격하려는 의도를 갖지 못하도록 했다.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던 카르타고는 용병에게 급료를 제때 지불할 수 없었다. 불만이 폭발한 용병들은 중립지대인 사르데냐에서 반란을 일으켜 카르타고를 위협했다. 이에 로마와 약속을 어기고 사르데냐로 반란진압군을 보냈다. 이를 알게 된 로마는 약속을 어긴 대가로 추가적인 배상금을 더 받아냈고 사르데냐와 코르시카까지 카르타고로부터 얻어내 영토확장을 했다. 이후 카르타고의 제해권 일부가 로마로 옮겨져 부(富)의 축이 로마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