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도는 부(富)] 노예들의 희생으로 유지한 그리스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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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노예들의 희생으로 유지한 그리스의 부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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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해상패권과 부는 노예제를 통해 이루어진 것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 외에도 폴리스들간의 크고 작은 세력 다툼이 이어졌다. 명백한 승패가 정해진 전투에서 승리한 폴리스는 패배한 폴리스의 시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그리스 폴리스들이 인구 부양을 위해 바다로 나아가 식민지 개척을 위해 노력하는 사이 스파르타는 타이게토스(Taigetos) 산맥 너머에 있는 메세니아(Messenia)로 시선을 돌렸다. 비옥한 토지에서 풍요롭게 살던 메세니아가 스파르타에 정복당하자 메세니아인들은 노예로 전락했다. 그들은 스파르타에 풍요를 빼앗겼다. ‘헤일로타이’라고 불리게 되는 노예들은 위험한 일을 담당했다. 전체인구 80%를 차지하던 메세니아인을 통제하기 위해 스파르타의 시민은 군인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스파르타인보다 훨씬 많은 그들을 통제하려면 막강한 군사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필요성 때문에 스파르타인은 어렸을 때부터 남녀 모두 강하게 키위질 수밖에 없었고 스파르타의 모든 시민은 그렇게 군인이 됐다.

아테네의 경우처럼 돈을 갚지 못해 인신매매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는 일도 있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에게해’와 ‘동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아테네는 주로 전쟁에서 승리한 전리품인 포로를 노예로 삼았다. 그리스 전체가 뭉쳐서 페르시아를 상대로 이뤄낸 승리였다. 전쟁의 규모만큼이나 전리품인 노예의 수도 많아 전쟁에 참여한 여러 폴리스에 상당한 수의 노예가 주어졌다.

폴리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노예들은 시민만이 참여할 수 있는 군인과 정치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활동했다. 매춘을 비롯해 올리브‧포도 농사처럼 일손이 필요한 곳에 투입됐다. 일부 숙련된 노예들은 도자기를 만들거나 전투 장비인 갑옷과 방패, 창, 검을 만드는 일에도 관여했다. 해상교역 같은 상업에 종사하는 시민에게는 노를 저을 노예가 필요했기에 100여 명이 넘는 노예를 거느리기도 했다. 다른 폴리스들에 비해 아테네는 은이 채굴되는 광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채굴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주로 노예들이 투입되어 그 일을 담당했다. 따라서 노예 공급이 꾸준히 필요했고 노예만 취급하는 거상도 등장했다. 라우리온 은광 등에서 수고한 노예들 덕에 아테네 시민들은 많은 부를 축적한 것이다.

아테네 시민 대부분은 노예 유지비용 때문에 최소 1~2명에서 최대 10명을 유지했다. 노예도 사람이라서 먹고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노예 중에는 상업이나 금융업에서 재능을 발휘해서 자유를 얻고 지주나 거상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었다. 민주주의가 태동했다고 알려진 아테네마저도 전체인구의 3분의 1이 노예로 구성됐다는 기록이 있다. 결국 노동과 생산을 담당하는 노예제가 밑바탕을 유지했기에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지켜졌던 것이다. 노예제가 없었다면 그리스와 아테네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발전에 제한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예제는 생산을 위한 노동력 제공이란 장점이 있지만 기술발전을 더디게 한다는 단점도 있다. 노예제는 로마 시대까지 이어지지만 비용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변화를 맞게 된다. 물론 노예제도는 노예가 다치거나 아플 수 있다는 위험도 따른다. 그러나 해상교역에 돈을 빌려줘 손실을 보는 것보다 안전했다. 결국 당시 그리스는 해상패권과 노예제를 통해 부를 이루고 유지됐던 것이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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