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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대기업 관련 고발 지침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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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대기업 관련 고발 지침 마련
  • 황보도경 소비자기자
  • 승인 2020.09.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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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와 검찰 간 의견 충돌 감소를 위한 것으로 보여
인식 가능성과 중대성을 기준으로 판단

[소비라이프/황보도경 소비자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이번 달 8일부터 '기업 집단 신고 및 자료 제출 의무 위반에 관한 고발 지침'을 제정해 시행한다.

출처 : 공정거래위원회
출처 :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는 매년 5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발표한다. 자산이 5조 원 이상인 기업은 혈족 6촌, 인척 4촌 이내의 총수 일가 주식 소유 및 계열사 현황 등의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비정상적인 경제력 확대를 막기 위해 기업을 규제한다.

그동안, 이 고발 지침은 별도의 행정처분 없이 형사 처벌만 규정돼 있었고, 정확한 기준 없이 사안별로 고의성 등을 고려해 고발 여부를 결정했다. 그러나 ‘주먹구구식 고발’이라는 비판과 동시에 신세계 등 과거 위원회가 고발하지 않은 건에 대해 ‘대기업 봐주기’ 논란까지 더해졌다. 이에 공정위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고의성이 입증될 때만 총수를 고발하도록 했다.

이 지침은 지난 4월 행정예고를 거쳐 확정됐으며 '의무위반에 대한 인식 가능성'과 '의무위반의 중대성'을 바탕으로 정해졌다. 두 기준은 모두 ‘현저’, ‘상당’, ‘경미’ 총 3단계로 나뉘었다. 인식 가능성은 행위 내용, 행위자의 인식 여부, 반복성 등에 따라 구분한다. 중대성은 위반 행위의 효과, 경제력집중 억제시책 운용에 끼치는 영향 등을 고려했다.

자료 제출 위반으로 중대한 제재를 받거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에서 제외된 경우에는 중대성이 현저하다고 여긴다. 또한 위반 행위가 계획적이거나 총수가 묵인하는 등의 상황에는 인식 가능성이 현저하다고 판단하기로 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인식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 중대성에 상관없이 고발할 수 있다. 인식 가능성이 상당한 경우는 중대성에 따라 고발 여부를 정한다. 인식 가능성과 중대성 둘 다 상당한 경우 대기업집단 소속 여부 등을 고려한다. 인식 가능성이 경미한 경우 고발하진 않지만, 인식 가능성을 확인하기 어렵고 중대성이 현저한 경우 수사기관에 통보할 수 있다.

공정위가 이번에 기준을 마련한 결정적 이유는 네이버와 카카오 사례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공정위는 카카오 의장이 5개 계열사의 신고를 누락한 것에 대해 크기가 작고,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고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공정위가 기업을 봐준다며 이의를 제기해 기소했다. 그러나 허위제출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 지난 2월 공정위는 “총 20개 계열사를 고의로 누락했다"고 주장하며 네이버 GIO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처럼 공정위와 검찰의 판단은 항상 충돌했다.

이번 지침 시행은 공정위와 검찰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 검찰 기소 사례와 법원 판례 등을 참고했다”고 밝혔으며,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검찰과의 의견 차이에 대해 "케이스가 쌓이면 격차가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추가로 공정위는 위장계열사 신고포상금을 도입하는 등 더 효과적으로 의무 위반을 감시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최근 대기업의 허위제출 혐의를 포착해 조사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지침 제정으로 인해 처분 결과에 대한 대략적 예측이 가능해지고, 총수 고발에 대한 불확실성도 줄어들 듯하다. 또한 공정위도 ‘기업을 상대로 갑질한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공정위는 “계열사들이 SPC삼립을 부당 지원했다”고 주장하며 SPC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64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 중공업에도 시정명령과 과징금 9억 7,000만 원을 부과했던 전적이 있다. 이에 대부분의 기업은 제재가 과하다며 억울함을 내비쳤고,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최근 공정위가 과한 제재를 가한다는 의견이 나왔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전에 지침을 마련할 수 있었음에도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고친다며 “미리 지침을 마련해 앞선 사례에도 적용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업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과거 제재를 받았던 기업들은 ‘악덕 기업’이란 오명을 벗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정위와 검찰의 ‘인식 가능성’ 및 ‘고의성’ 판단 차이는 완벽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고발 기준을 세웠지만 결국 해석 차이가 생긴다는 점은 똑같다”라는 우려를 내비쳤다. 

공정위의 고발 후 재판 등 법적 절차를 거치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된다. 소비자들은 그동안 자세한 상황을 모른 채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그러나 이 지침이 수행됨으로써 고발 횟수가 줄어들어 소비자들의 혼란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여러 소식에 민감한 주식시장 특성상, 과거 공정위에게 고발됐다는 소식으로 인해 주가가 하락하거나 요동쳤던 적이 많았다. 이로 인해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꽤나 피해를 봤었다. A 씨는 과거 현대중공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공정위가 현대중공업을 고발한 후 주가는 흔들렸고, 주식 시장 내 분위기가 혼란스러졌다. 이에 A 씨는 "제대로 된 기준 없이 고발을 당하니 당황스러웠다"며 "언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기다리라는거냐"고 말하며 억울함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번에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이와 같은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기업 후려치기' 해놓고 이제야 지침을 마련하네", "정해봤자 어차피 판단에 따라 고발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도 지침을 마련했다니 다행이네요" 등 다양한 반응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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