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제150호] 코로나 위약금은 여전히 소비자 몫
상태바
[제150호] 코로나 위약금은 여전히 소비자 몫
  • 황혜선 교수
  • 승인 2020.04.09 1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비자권리를 다시 짚어봐야”

[소비라이프/황혜선 교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며 전 세계의 경제 시간이 멈춘 듯하다. 소비자의 일상적인 소비생활도 많은 부분이 달라지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과정은 비단 사람들 간의 교류를 중단하는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소비생활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부족한 소비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더욱 힘들어졌다.

최근 여행뿐만 아니라 결혼식, 돌잔치와 같은 행사를 계획대로 치르지 못하고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 하면서 소비자 피해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 피해사례는 대부분 소비자분쟁 해결기준보다 더 높은  위약금을 책정한 계약의 내용 때문에 소비자가 계약 취소로 인한 부담을 크게 떠안으면서 발생한다.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소비자들은 개별 사업자가 약관의 형태로 소비자와 맺은 계약의 내용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에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유럽 출장을 위해 서로 다른 두 곳의 여행업체를 통해 예약했던 숙소를 취소하면서 두 업체의 전혀 다른 대응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 곳은 글로벌 여행업체, 다른 한 곳은 한국 여행업체로 두 곳 모두 계약 조건에 ‘환불 불가’ 사항이 제시돼 있었다. 그런데 한국 여행업체는 그 당시 해당 나라에 입국이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어려울 수도 있어 출장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사업체의 일부 손실을 감수하며 환불을 허락해주었다. 반면 글로벌 여행업체는 계약조건을 다시 강조하며 환불 불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예약 당시 제시됐던 ‘환불 불가’ 조건이 숙박일까지 남은 기간을 기준으로 환불 규정을 적용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에 앞선다는 것이다.

약관은 사업자가 다수의 개별 소비자와 거래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둔 계약 내용이다. 사업자의 이익이 우선 반영될 수밖에 없어 더욱 철저히 살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비자가 거래할 때마다 개별약관의 부당함을 면밀하게 따져보기는 어렵다. 약관의 내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들 소비자는 그런 사업자와 계약을 맺지 않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더욱이 소비자는 사업자의 약관 내용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을 크게 넘어서는 위약금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어렵다. 소비자는 계약의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불리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계약을 체결하고 이행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정보 부족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비할 수 없었던 것은 사업자의 잘못도 소비자의 잘못도 아니다. 지금처럼 전 세계 전염병 확산 같은 일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발생할 소비자 문제 처리 방안도 촘촘하게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방관할 수만은 없다. 별도의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였더라도, 그로 인한 과도한 소비자부담으로 귀결되는 상황은 막아야 할 것이다.

최근 외식과 예식업 등에서 속출하는 위약금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개별약관의 과도한 위약금으로 인한 분쟁이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약관심사를 통해 부당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맺은 계약의 취소와 그로 인한 위약금 분쟁은 개별 사업자와 소비자의 원만한 해결을 일차적으로 유도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정보력과 교섭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소비자들이 사업자에 대응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소비자의 과도한 위약금 부담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소비자, 사업자, 정부가 각자의 위치에서 소비자의 권리 수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소비자는 계약 전후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계약의 내용을 면밀하게 살피고 부당한 조건이 없는지 사전에 인지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업자는 최근에 발생한 소비자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고 공정위의 방침에 협조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자권리 수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공정한 거래환경을 유지하는 정책을 펼쳐나감에 있어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인 힘의 부족을 경험하는 소비자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비록 과거에 비해 소비자의 정보 활용 역량이 많이 향상되었으나 여전히 시장에서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과 교섭능력의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이 소비자가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사업자와의 분쟁해결의 원칙이라면 이를 사업자가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나가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황혜선 성균관대 소비자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