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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응의 LOVE LETTER] 발 빠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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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응의 LOVE LETTER] 발 빠짐 주의!
  • 김정응 FN 퍼스널브랜딩 연구소 소장
  • 승인 2019.11.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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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김정응 소장] “발 빠짐 주의! 발 빠짐 주의!” 이 소리 들어 보셨나요?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들어서 귀에 익은 소리일 것입니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이 넓으니 조심하라는 반복 안내방송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방송 외에도 스크린도어에 표시 스티커를 부착해서 시각적 안내까지 하고 있습니다. ‘발 빠짐 주의 Watch your step!’

어느 금요일 출근 시간이었습니다. 그 ‘발 빠짐 주의’ 스티커가 부착된 스크린도어 앞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 빠짐은 나쁘지만 그래도 뭔가에 빠져야 행복한 거야……” 연세를 가늠할 수 없는 흰 안경테의 할머니가 혼잣말을 한 것입니다. 군자역에서 사무실이 있는 공덕역에 이르는 동안 그 할머니의 중얼거림 소리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제가 ‘뭔가에 빠져보라’라는 바로 그 말에 빠져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전 주(週)에 저는 예기치 못한 사정이 생겨서 단풍 구경을 가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오래전에 점 찍어 뒀던 약속이었기에 못내 아쉬웠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운명과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브리다>를 손에 잡았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읽어가다가 다음의 단락에서 한참 머물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푹 빠져보라는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려 바닷물까지 데리고 가더니, 아무 말 없이 물속에 풍덩 집어넣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곧 이것이 아버지의 장난이라는 걸 알고 재미있어했다. 
“물이 어떻니?” 아버지가 물었다. 
“좋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 이제 앞으로 뭔가를 알고 싶으면 그 안에 푹 빠져보도록 해”’

사무실에 도착해서 빠진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꽤 많은 의미가 있었는데 결론은 두 가지의 쓰임새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정의 늪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술, 담배, 마약, 도박 등이 대표적인 것이죠. “패가망신한다, 신세 망친다” 하며 빠지지 말라고 수없이 들어온 바로 그 빠짐입니다. 

다른 하나는 긍정의 바다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 외국어, 노래, 당구, 요리 등에 정신이 아주 쏠리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초(超)집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당연히 긍정의 바다에 빠져야 할 것입니다. 긍정의 빠짐에 집중하면 부정의 빠짐은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풍덩 빠져보려고 하면 빠질 곳이 여의치 않습니다. 주위에 물어보니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대답이 많았는데 이것은 대중가요 노래 제목처럼 자신만의 노래에 담아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요긴한 빠짐의 바다는 매우 현실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 가장 잘하는 일에 빠지라면 너무 교과서적인가요? 아니면 마음속 깊은 웅덩이로의 빠짐은 어떨까요? 즉, 심(心)의 심연(深淵)에. 어찌 보면 행복으로 가는 길도 바로 그런 또는 이런 것에의 빠짐이 아닐까 합니다. 지하철 할머니의 통찰도 소설 속 아버지의 통찰도 모두 여기에 방점이 있을 것입니다. 

들어내기 남우세스럽지만 저는 이미 빠질 곳을 정했습니다. 아니 벌써 빠져버렸습니다. 책에 빠지고, 글쓰기에 빠지고, 여기서 얻은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강연에 빠진 것이 제가 선택한 ‘빠짐의 3바다’입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떠한지요?

김정응 

FN 퍼스널브랜딩 연구소 소장 / 작가

저서 <당신은 특별합니다> <북두칠성 브랜딩> <편지, 쓰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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