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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도박을 권하는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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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도박을 권하는 은행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28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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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에서 판매한 상품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말 한대로 갬블이라면 은행들은 금융소비자들의 개인정보인 핸드폰번호로 단체문자를 돌려가며 도박을 권유한 것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이미 잊혔지만 우리은행에서는 2005년 늦가을인 11월부터 ‘파워인컴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 덕분에 은퇴한 퇴직자나 고령자와 주부들이 많이 가입했다. 2,277명의 소비자는 1,506억 원의 펀드를 매입했고 은행은 나름의 성과를 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에서 발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2008년에 터지면서 시작되었다. 이 상품의 만기 수익률이 각각 96.07%, 90.38%를 기록했는데 ‘+’가 아닌 ‘-’이었다. 당시에 예측할 수 없는 사태로 인해 손실이 발생했다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파생상품임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금융과 관련한 인지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기본적인 국공채 수익률에 추가로 금리를 더 얹어서 이자를 지급하는 상품으로 설명하며 안정된 형태의 금리상품으로 금융소비자들에게 판매했다. 

지루한 법정공방은 5년이라는 세월을 덧없이 흘려보냈고 소비자들은 가입한 시기에 따라 원금을 기준으로 20~40%정도 사이에서 회수하는데 그쳤다. 결국 적게는 60%이상에서 많게는 80%까지 많은 금액을 손실 보게 된 것이다.

2008년을 장식하는 금융사건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키코 사건’은 원·달러 환율이 상품에서 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미리 정해놓은 환율이 적용될 수 있어 자금에 여유가 없고 환율에 민감한 중소 수출기업들이 환헷지를 위해 가입한 파생상품이었다. 

문제는 상품에 가입할 때 자세한 설명이 부족했던 '옵션'이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옵션에는 원·달러 환율이 약정 범위 아래로 내려가면 계약을 무효로 하는 단서를 달았는데 반대로 환율이 약정 범위에서 한번이라도 벗어나 상승을 하게 되면 환율이 상승한 만큼의 2~3배를 가입자가 지불했다. 더군다나 환율이 미리 정한 범위를 넘을 경우 2년 동안 계약을 해지할 수도 없고 상한선이 없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말 그대로 자신들이 불리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자신들이 유리하면 2년간 해지할 수 없도록 묶여있어야 하는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원·달러 환율을 위로 올려주었고 은행이 기업들을 묶어둔 덕분에 은행은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여기에 기업들은 수출이 잘 되더라도 은행에 돈을 고스란히 가져다 바쳐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흑자부도와 흑자도산이 줄을 이었다.

2010년 6월에 있었던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의하면 키코가 모셔온 파장덕분에 675개나 되는 수출기업은 3조 2,247억 원가량의 손해를 봤다. 그중에서 버티지 못한 78개 기업들의 성적은 화려하다. 부도가 나거나 폐업을 했고 그나마 사정이 나으면 법정관리와 워크아웃 등으로 이어졌다. 감독기관이 은행에서 다양한 파생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은행에서 터진 DLF, DLS사태를 통해 은행은 사모펀드를 포함해 각종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전면 금지를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금융 감독기관들은 은행들이 상품판매에 대한 내부통제가 부실했다는 부분과 자신들의 대한 책임에 대해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은행이 사모펀드를 포함한 각종금융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전면 금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을 밝히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의 머릿속에는 은행이 나라에서 법으로 예금자보호를 해주는 금융상품을 파는 안전한 금융기관이다. 그러한 기관에서 맡긴 돈의 95%이상이 손실로 돌아오는 금융상품을 판매했다는 것은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금융 감독기관들은 방향이 잘못된 상황판단을 하고 있다. 고위험군의 금융상품을 만드는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러한 위험성이 높은 금융상품을 소비자들에게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박혀있는 은행에서 전문지식이 부족한 은행원들에 의해 판매되는 현실이 문제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갬블은 도박으로 해석된다. 도박은 ‘강원랜드’와 같은 허가된 장소에서만 해야 한다. 그래서 도박을 온라인에서 하는 것은 불법이기에 ‘불법 도박 사이트’라는 말이 생겼다. 만약 은행들에서 판매한 상품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말 한대로 갬블이라면 은행들은 금융소비자들의 개인정보인 핸드폰번호로 단체문자를 돌려가며 도박을 권유한 것이 되고 소비자들의 자산관리를 한다고 자처하는 은행은 상품을 팔기 위해 노력하는 세일즈업자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고 이번 일이 잊히게 되면 은행은 우리에게 다시 도박을 권할 것이다. 누군가는 여기에 또 속게 되고 피해는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더 이상의 고집을 피우지 말고 금융소비자를 위해 자신의 부족한 자격과 능력을 스스로 증명한 은행에게 그들의 능력을 벗어난 금융상품을 더 이상 판매하지 못하도록 제도와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이러한 일이 또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번에도 넘어간다면 1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지금 또 벌어졌듯이 10년 후에도 같은 일이 생길 것이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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