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호] 공유경제와 사회적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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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호] 공유경제와 사회적 소비
  • 박나영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
  • 승인 2019.03.1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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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 / 박나영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 “당신의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생명을 적게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당신은 그만큼 더 ‘소유’하게 되고, 당신의 생명은 그만큼 더 소외된다” - 칼 마르크스

▲ 박나영 금융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의 첫머리에 이 글을 인용했다. 이 책은 1976년에 발간되었고 그로부터 8년 후인 1984년, 하버드대학교의 마틴 와이츠먼 교수가 ‘공유경제: 불황을 정복하다’라는 논문에서 공유경제의 개념을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했다.

‘내 것’을 꼭 가지지 않고도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바로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공유경제 하면 떠오르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소비자들이다. 핸드폰 하나만 가지고 세계 곳곳 어디든 떠나 머무를 곳을 구하고 차를 빌린다. 숙박과 교통뿐만 아니라 금융, 공간, 재능 등 개인이 소유하지만 나눌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나눈다.

공유경제를 표방하는 플랫폼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공유경제는 여러 비판을 받는다. 지금의 공유경제는 경제적 교환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와 기업, 공급자 간의 법적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 소비자 문제가 대두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의 공유경제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소비자 보호와 피해보상 의무 부과 등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2015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CC 글로벌 써밋 2015’ 기자간담회에서도 요하이 벤클러 교수는 ‘공유경제의 근본은 경제적 교환이 아니라 사회적 교환’이라고 하며, 지금의 공유경제는 초기의 공유경제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교환이란 무엇일까? ‘내 것’을 꼭 가지지 않고도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바로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공유경제가 실현되려면, ‘남의 것’을 ‘내 것’처럼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에어비엔비’는 숙박업이 되고 ‘우버’는 운송업이 되고 ‘P2P 대출’은 금융업이 된다.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하는 소비자는 절대로 공유경제의 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나’의 이익를 최대화하면 반대쪽에 있는 ‘너’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환이 성립되지 않는다.

나의 ‘존재’를 드러낼수록, 그리고 나의 생명을 많이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나는 그만큼 덜 ‘소유’해도 되고, 나의 생명은 그만큼 더 확장된다. 그 말대로라면 공유경제를 대하는 우리는 내가 머문 곳에 나를 최대한 드러내야 한다.

공유경제가 보여준 우리의 민낯은 우리가 현재 ‘내 이익’만을 생각하는 존재감 없기를 바라는 ‘소비자’와 ‘공급자’라는 것이다.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를 보호하는 규제는 필요하지만 규제가 공유경제를 지속시키는 답은 아니다. ‘누가’ 집을 빌려주는 지 중요한 만큼 ‘누가’ 그 집에 머물렀는지도 중요해야 공유경제를 지속시킬 수 있다.

‘소비자’와 ‘공급자’가 모두 ‘사회적 교환’ 즉 ‘사회적 소비’가 무엇인지에 대해 같은 것을 공유할 때 공유경제는 지속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공유경제로 분류가 되더라도 실제 제공되는 서비스는 전통적인 숙박업, 운송업, 금융업인 ‘공급자’와 공급자에게 어떤 존재감도 없는 전통적인 ‘소비자’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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