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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호] 가벼움을 소비한다…‘짧고 간단한’ 스낵컬처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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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호] 가벼움을 소비한다…‘짧고 간단한’ 스낵컬처 열풍
  • 민종혁 기자
  • 승인 2018.03.12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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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즐거움 선호하는 흐름이 더욱 다양한 콘텐츠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 열어

[소비라이프 / 민종혁 기자]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와이파이 환경, 클라우드 서비스의 발전 등으로 사람들은 이제 출퇴근 시간은 물론 약속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혹은 화장실에 앉아있는 순간에도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렇듯 언제 어디서나 간편히 즐길 수 있는 스낵(Snack)처럼 문화를 ‘스낵컬처(Snack culture)’라고 한다. 스낵컬처는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와 ‘좋아요’ 기능을 통해 콘텐츠를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페이스북,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의 웹툰, 웹소설 등 다양한 경로로 확산되고 활용되며 현대인을 대표하는 문화가 됐다. 이제 소비자들은 짧고 간결하며, 시각적이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좋은’ 콘텐츠로 여기고 소비한다. 이처럼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스낵컬처로 방송, 광고뿐만 아니라 출판, 유통업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본방’보다 클립 영상이 더 화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소비자라면 한 번쯤 웹툰, 웹드라마, 웹소설, 웹영화, 클립 영상 등을 들어보거나 찾아봤을 것이다. 이는 모두 스낵컬처 트렌드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다.

 
스낵컬처는 방송가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예능 방송은 대부분 1시간~1시간 30분 남짓한 긴 호흡으로 방영된다. 예전에는 예능 팬들에게 ‘본방(본방송)사수’가 필수 덕목이었으나 최근에는 방송 후 주요장면을 재가공해 1분~3분 내외로 짤막하게 올리는 클립 영상이 본방보다 더 많은 조회수와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아무리 예능이라고 해도 1시간의 긴 방송동안 모든 순간이 다 재미있을 수는 없다. 클립 동영상은 방송 중 재밌었던 핵심만 짤막하게 올려주기 때문에 다시 보기 귀찮거나 짧은 시간 내 재미를 얻고자 하는 시청자에게 본방보다 더 흥미로운 콘텐츠가 된다.

클립 영상은 본방 시청의 견인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재미있는 클립 영상은 SNS를 통해 들불 번지듯 순식간에 전파되고 이슈가 된다.

클립 영상은 주요장면만 편집된 영상이기 때문에 클립 영상을 재밌게 본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전체 방송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능방송이 방송되는 주말 오후 시간에 야외활동이 잦은 대학생들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화제가 된 클립 동영상을 먼저 접하고, 재밌다고 생각하면 그때 VOD로 본방을 다시 본다”고 말한다.

즉 과거에는 영상의 흐름이 선(先) TV, 후(後) 유튜브였다면, 지금은 선 유튜브, 후 TV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스낵 영상 속 장소 방문하거나 구매에 영향
실제로 지난해 8월 20대 전문 연구단체인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발표한 <19·34세대 온라인 영상콘텐츠 및 광고 시청 행태 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전국 19~34세 남녀 800명의 조사자 중 대부분(91.3%)이 1주일 내 한 번이라도 온라인 영상콘텐츠를 이용해봤다고 답했다.

또한 19·34세대는 소셜 미디어로 유통하기 위해 제작된 ‘소셜 스낵 영상’을 단순히 시청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온라인에서 소셜 스낵 영상을 보고 댓글로 친구를 소환(SNS에서 친구를 불러 이야기 나누는 기능)하거나 친구에게 링크를 공유한 비율은 62.5%로 나타났다.

소셜 스낵 영상콘텐츠를 보고 따라 하거나 영상 속 장소에 가본 적 있는 19·34세대는 42.0%였고, 제품/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이용한 적 있다는 비율은 41.3%에 달했다.

다양한 콘텐츠가 시장에 진입할 길 열어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흐름은 모바일 미디어 소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 인기를 모으거나 가장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는 영상은 대부분 20분 이하의 영상들이다. 유튜브에 개인 콘텐츠를 올리는 크리에이터, 이른바 ‘유튜버’ 또한 15분 남짓의 길이로 영상을 편집해 올린다. 만약 영상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콘텐츠라면 차라리 연이어 올리는 연재 방식을 선택할지라도 긴 영상은 올리지 않는다. 긴 영상을 올리더라도 구독자들이 끝까지 보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영상과 짧은 글, 짧은 즐거움을 선호하는 흐름은 더욱 다양한 콘텐츠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이러한 콘텐츠는 제작비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아마추어의 시장진입 허들을 낮춘다. 바로 대표적인 분야가 ‘웹드라마’다.

‘SNS드라마’, ‘모바일 드라마’ 등으로 불리는 웹드라마는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에서 제작해 송출되는 드라마가 아닌 누구나 제작해 인터넷에 업로드하고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 전국으로 방송되는 TV 드라마 경우 대중들의 평가 기준이 상당히 높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전문 연출가와 배우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으며, 작품이 생각보다 흥행하지 못하면 감독, 배우, 스텝은 비난과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웹드라마의 경우 웹드라마에 출연하는 연예인의 팬층이나,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시청하는 시청자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완성도에 대한 큰 부담 없이 제작할 수 있다. 또한 웹드라마는 심의나 규정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방송국의 편성과 배급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에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제작사에서 다양한 주제로 웹드라마를 만들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매번 비슷한 갈등과 이야기를 다루는 공중파 드라마를 떠나 뱀파이어, 판타지, 직장, 취업 등 이색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웹드라마를 찾는다.

더불어 한 편당 시간이 짧아 극의 진행이 빠른 웹드라마의 특징은 짧은 시간 내 흥미를 느끼고자 하는 스낵컬처 소비자들이 웹드라마를 시청하는 이유가 된다.

대표적인 스낵컬처 콘텐츠, 웹툰
스낵컬처 콘텐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웹툰이다. 웹툰은 네이버, 다음, 레진코믹스 등에서 연재되며 강력한 팬덤 층을 확보한 콘텐츠 산업이다. 200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주로 개인 홈페이지 등에서 일기 형식으로 연재되던 웹툰은 다음, 네이버 등의 포털사이트에서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거대 산업으로 몸집이 커졌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웹툰, 1조 원 시장을 꿈꾸다> 보고서를 통해  웹툰 시장 1차 시장 규모 및 2차 시장과 부가가치, 수출까지 고려한 총 시장 규모가 올해 8,80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웹툰이 이렇게 거대 콘텐츠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웹툰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콘텐츠이고, 웹툰 플랫폼이 과거 출판 만화를 좋아했던 기존 팬층까지 흡수할 만큼 다양한 작가와 장르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출판만화 시절 만화는 독자와 작가가 일방향적 소통이었다면, 웹에서 연재되는 웹툰은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과 매주 연재되는 방식으로 최신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시대 흐름과 트렌드, 독자 의견에 신속하게 반응하며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웹툰이 가진 힘이다.

과거 웹툰은 무료로 본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현재는 돈을 내고도 웹툰을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등장했다. 돈을 지불하면 무료로 웹툰을 즐기는 독자보다 1화 내지 몇 화를 먼저 볼 수 있기 때문에 웹툰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다음 웹툰 내용을 먼저 보기 위해 거리낌 없이 돈을 지불한다. 이러한 변화는 짧은 콘텐츠인 스낵컬처에도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이책 아닌 SNS 통해 호응 얻는 ‘시’
스낵컬처 열풍은 출판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이 더 익숙한 최근의 젊은 세대는 부담스러운 한 권의 두꺼운 소설책 대신 매회 짧게 연재되는 웹소설을 좀 더 편한 독서 수단으로 여긴다.

 
웹소설은 웹툰, 웹드라마보다 좀 더 유료화된 콘텐츠다. 웹소설 시장은 대부분 정해진 시간동안 마음껏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정액권이나 한 편당 돈을 지불하고 보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그렇지만 편당 가격이 저렴하기에 소비자들은 “한 권의 책을 사는 것보다 읽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는 웹소설이 더 저렴한 편”이라 말한다.

전문적인 웹소설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작가 외에도 페이스북 등 개인 SNS를 통해 짤막하게 시를 올리는 ‘SNS 시인’은 기성 작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하상욱이다. 하상욱은 페이스북에 몇 줄짜리의 짧은 시를 올려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낸 인물이다. 그가 올리는 시의 특징은 제목을 가장 마지막에 배치해 ‘반전’의 효과를 노리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끝이/어딜까/너의/잠재력’이란 4줄짜리의 짤막한 시 밑에 ‘다 쓴 치약 중(中)에서’라는 제목을 마지막에 넣는다. 그는 일종의 말장난과 같은 시를 통해 유머와 공감을 끌어낸다. 하상욱이 SNS에 그동안 써온 500여 편의 시를 모아 지난 2013년 출간한 《서울시》는 23만부가 넘게 팔리는 등 ‘대박’을 이뤄냈다. 일각에서는 “하상욱의 시는 진정한 시(詩) 또는 문학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상욱의 시가 젊은 층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기성 작가 시집‘만큼’ 혹은 ‘그보다 더’ 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세대가 원하는 콘텐츠가 바로 유쾌하게 공감할 수 있는 짧은 콘텐츠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짧은 순간 안에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스낵컬처 특성상 폭력성과 선정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거대 포털사이트 외에도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연재되는 웹툰의 경우 지나치게 선정적인 작품이 전체이용가로 올라오기도 한다. 웹소설 또한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비윤리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짓거나 적나라한 성적 표현을 넣는 등 작품성보다 선정성을 내세우는 작품들이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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