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제119호]생리대마저 발암물질 검출...안전의 마지노선 어디까지 깨지나
상태바
[제119호]생리대마저 발암물질 검출...안전의 마지노선 어디까지 깨지나
  • 고혜란 기자
  • 승인 2017.09.07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개제조사, 같은 곳에서 접착제 공받아...전수 조사 마무리 시 모든 결과 공개 예정

[소비라이프 / 고혜란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상처가 아직 채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여성 생활필수품인 생리대에서도 유해성분이 검출돼 소비자들의 ‘케미컬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가 커지고 있다.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깨끗한 나라’의 생리대 브랜드 ‘릴리안’ 제품을 사용한 후 생리양이 줄어들고, 생리통이 심해지는 등의 부작용 신고가 잇따르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해당 물품을 수거하고 이달 검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소비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이어 살충제 계란, 독성 생리대까지 연이어 터지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관리에 허술했다는 방증”이라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0여 개의 총휘발성유기화합물 검출돼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에 대한 이슈는 20~30대 여성이 주 회원으로 가입된 다음과 네이버의 카페에서 최근 1년 사이에 해당 제품과 관련된 부작용 사례 글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여성들은 “원래 생리 주기가 일정한 편이었는데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한 이후 매우 불규칙해졌다”, “릴리안 생리대를 쓰면 생리양이 눈에 띄게 줄어 걱정된다”는 등의 서로 비슷한 부작용을 토로했다.
 
릴리안 생리대의 논란은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여성건강을 위한 월경 용품 토론회’에서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시험’ 결과가 발표된 이후 더욱 거세졌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 연구팀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중형 생리대 5종, 팬티라이너 5종, 다회용 면 생리대 1종 등 국내 판매량이 높은 11개 제품을 대상으로 체온과 같은 환경에서 방출물질 검출 시험을 시행한 결과 약 200종의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이 검출됐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이 중에는 생리 주기나 여성 생식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타이렌이나 톨루엔 등 20여 종의 독성화합물질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5개 제조사, 같은 곳에서 접착제 공급받아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달 23일, 식약처는 릴리안 생리대 품질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다음날인 24일, 국내 생리대를 생산하는 제조업체 중 시중 유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한킴벌리(주), 엘지유니참(주), 깨끗한 나라(주), 한국피앤지(유), ㈜웰크론헬스케어 등 5개 곳에 대한 현장조사를 착수했다. 주요점검 내용은 △접착제 과다 사용 여부 등 원료 및 제조공정이 허가받은 대로 제조되고 있는지 여부 △업체의 원료, 완제품 품질 검사 철저 수행 여부 △제조·품질관리 기준 준수 등이다.
 
하지만 식약처에 따르면 릴리안 생리대 제조사인 깨끗한 나라를 포함해 국내 주요 생리대 제조업체 5곳은 동일한 제조소로부터 접착제를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소비자의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식약처, 릴리안 생리대 검사 면제해
 
생리대에서 그 많은 독성 화학물질이 검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왜 사람들은 알지 못했을까? 바로 식약처의 생리대 품질관리기준 항목에 TVOC 유무 여부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생리대가 시중에 출시되기 위해선 식약처의 안전성, 유효성, 품질관리기준 심사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 심사에서는 생리대 모양과 색소, 산알카리 여부, 형광증백제와 폼알데하이드 포함 여부 등을 검사하고 TVOC 유무는 빠져있다. 
 
하지만 이 릴리안 생리대는 식약처의 안전성·유효성 심사조차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식약처에서 제출받은 생리대 인허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깨끗한 나라는 총 75개 품목을 식약처에 허가 요청을 했는데 75개 품목 모두 안전성·유효성 심사에서 면제됐다.
 
식약처는 “품질관리를 위한 기준규격이 <의약외품에 관한 기준 및 시험방법>(식약처 고시)에 수재(등재)돼 있어 안전성·유효성 심사자료 제출이 면제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 생리대의 △성상 △순도시험 △조작조건 △질량 △흡수량 △삼출 △강도 등이 규격화돼 있는데, 이를 준수하면 따로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맹점을 이용해 대부분의 생리대가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면제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 이후 식약처에서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 생리대는 전체 1,082개 품목 중 4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99.6%의 생리대가 식약처의 검사를 받지 않은 채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면제받은 생리대는 관련 기준규격에 맞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조차도 식약처에서 관리하고 있지 않아 사실상 ‘구멍 투성’인 상태로 생리대가 제작·유통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수조사 마무리 시 모든 결과 공개 예정
 
한편 식약처는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교수가 실시한 시험결과에 대해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식약처는 “실험결과 보고서에 상세한 시험방법 및 내용이 없고 연구자 간 상호 객관적 검증(Peer-review) 과정을 거치지 않아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식약처는 국내 주요 생리대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조사한 결과 모두 릴리안 생리대에 사용된 것과 같은 스틸렌부타디엔공중합체(SBC) 계통의 물질을 사용하고 있으며 국제암연구기관은 SBS를 발암물질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생리대는 여성의 생식기에 직접 닿는 제품이고, 부작용을 실제로 경험한 소비자가 존재하는 만큼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TVOC과 인체 부작용 관계의 역학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식약처는 검증위원회와 함께 이번 식약처의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가 마무리되는 즉시 업체명, 품목명, 휘발성유기화합물 검출량, 위해평가 결과를 모두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