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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속 광복회 '경술국치'추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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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속 광복회 '경술국치'추념식
  • 민종혁 기자
  • 승인 2016.08.29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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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대한민국 국호를 처음 쓴 1919년 4월 13일을 대한민국 생일로 정하면 왜 안되는가"

[소비라이프 / 민종혁 기자] 오늘(29일)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경술국치’ 106주년이 되는 날이다. 최근 건국절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광복회는 추념회를 갖는다. 

경술국치는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날로 치욕스러운 날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라 불리는 날이다. 일제는 경술국치를 한일합방, 한일합병, 한일병합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 (사진: 일본 대사관 앞을 지키고 있는 '소녀상')

일제의 조선합병은 1904년 러일전쟁 승리를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일제는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8월 제1차 한일협약, 1905년 11월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을 차례로 체결하여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일제의 조선합볍은 1910년 5월 데라우치가 3대 통감에 취임하면서 빠르게 추진되었다. 8월 16일 데라우치는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통보했다. 그리고 8월 18일 한국정부 각의에서 조약안이 통과되었고,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되었다.

그러나 실제 조인 사실은 조선인의 저항을 우려하여 29일이 되어서야 발표되었다. 조선은 건국 519년 만에 합병의 형식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경술국치 106주년이 되는 29일에는 광고복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의 추념식이 열린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남산 통감관저터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제막된다. 통감관저터는 1910년 8월 22일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을사늑약’을 체결한 곳이다.

서울시와 ‘기억의 터’ 추진위원회가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기억의 터' 제막식에는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최영희 기억의 터 추진위원장 등 12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광복회 서울·경기·인천지부 회원 70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경술국치 추념식을 하고 찬 죽을 먹으며 망국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다.찬 죽을 먹는 것은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선열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광복회 각 시‧도지부 주최로 광주와 청주, 안동 등 10여개 지역에서도 동시에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행사는 경술국치일 약사보고, 개식사, 추념사,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박유철 광복회 회장은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왜곡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건국절 제정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이라며 “국치일 추념식 및 조기게양을 통해 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는 광복회는 건국절과 관련하여 “1919년 3·1운동 직후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하고, 1948년 정식 정부가 수립돼 그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역사의 정설”이라며 “대한민국 국호를 처음 쓴 1919년 4월 13일을 대한민국의 생일로 정하면 왜 안 되는가”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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