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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의 <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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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의 <어머나>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9.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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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의〈어머나>는 2006년 말 한 방송사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조사한 결과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인기곡으로 떴다. 지금도 그 여세를 몰아 꾸준히 불린다.

노래를 만든 사람은 ‘음악인 겸 매니저’ 윤명선 씨(42). 트로트풍의 대중가요 <어머나> 작사·작곡가로 이름 나 있다.

<어머나>하면 신세대 여가수 장윤정(29)을 떠올리지만 가요계에선 다르다. 가수의 가창력도 중요하지만 뛰어난 작곡과 시의성에 맞는 노랫말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때 히트의 길에 들어선다는 게 가요계 통설이다. 이런 맥을 기차게 잡은 사람이 바로 윤 씨다.

<어머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에피소드는 꽤 재미있다. 말 그대로 ‘어머나!’ 할 정도로 졸지에 태어난 곡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어느 날 윤 씨가 길을 가는데 바로 앞에서 어떤 아기엄마가 ‘어머나!’ 하면서 대(大)자로 넘어졌다. 그 때 거의 동시에 바로 옆에서도 ‘어머나!’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안고 가던 한 아주머니가 갑자기 아기가 손으로 얼굴을 치자 놀랐던 것.

그날 ‘어머나’를 10번 이상 들었던 윤 씨는 ‘어머나!’ 하며 무릎을 쳤다. 여자들은 놀라도 ‘어머나!’ 슬퍼도 ‘어머나!’ 기뻐도 ‘어머나!’ 반가워도 ‘어머나!’….

30분 만에 작사·작곡 완성

이렇게 중독성이 강하면서도 여성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말도 없겠다 싶었다. 갑자기 재미난 악상이 떠올랐다. ‘이걸 갖고 노래를 만들면 히트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머나’란 말이 여성에게 주는 느낌을 살리는 밝고 경쾌한 노랫말 짓기에 나섰다.

대중가요 <어머나>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작곡·작사하는데 다 합쳐서 30분도 채 안 되게 걸렸다. 진통 없이 벼락치기로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전 국민의 애창곡이 돼버린 공전의 히트곡 <어머나>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 장윤정 특유의 콧소리가 어우러져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게 한 것이다.

윤 씨의 동물적 감각은 신세대 가수 장윤정을 처음 봤을 때도 빛을 발했다. 원래 그가 생각했던 노래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엔가 가수 계은숙이었다. 계씨 쪽에서 노래를 부탁해 <어머나>를 작사·작곡해 건넸다. 결과는 퇴짜였다. 게다가 인연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곡을 갖고 일본으로 갈 즈음 일이 터졌다. 계은숙이 도박사건에 얽혀 활동이 힘들어졌다.

그 뒤 주현미, 송대관, 김혜연 등 8명의 가수가 <어머나>를 녹음했지만 ‘노래가 가볍고 깊이가 없다’는 이유로 줄줄이 거절당했다. 주현미는 “제목을 바꾸면 부르겠다”고 했지만 윤 씨가 거부했다. 주현미가 부르면 노래는 뜨겠지만 위트와 경박함을 접목한 노래의 특성이 죽을까봐 걱정해서였다.

그런 가운데 가수를 찾던 중 장윤정이 속한 연예기획사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윤정과 윤 씨는 그렇게 해서 첫 대면을 했다. “<어머나>로 취입하고 싶다고 하기에 일단 가수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했죠. 그렇게 해서 윤정이를 소개 받았어요. 얼굴 한 번 딱 보고 OK 했습니다. 오디션도 볼 필요 없다고 했죠. 매니저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얼굴만 봐도 답이 나오거든요. 나중에 들어보니 노래도 제법 잘 하더군요.” 윤 씨의 회고담이다.

노래 뜨자 ‘미운 오리새끼’ 취급 

노래는 결국 ‘생짜 신인’ 장윤정에게 돌아갔다. 녹음 때 윤 씨는 노래가 확실히 뜬다는 감이 왔지만 장윤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노래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작곡 1년 만에 음반으로 나온 <어머나>는 8전9기 끝에 초대형 대박을 터뜨렸다.

노래가 갑자기 빅히트하면서 주변의 견제가 심했다. 장윤정이 공연 때 대기실에 못 들어가 차에 있다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젊은 가수들 사이에선 트로트를 하는 이상한 또래 가수고, 트로트가수에 끼기엔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당한 것이다.

1집 음반 <어머나>의 엄청난 성공 뒤 ‘장윤정이 2집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너도 나도 곡을 주기 시작했다. 얼추 100곡이 넘었다.

장윤정은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나 오산·수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수원 영신여고, 서울예술대를 졸업했다. 2005년엔 ‘경기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도 뛰었다.

장윤정은 1999년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촉망 받는 신인가수로 주가를 올렸다. 하지만 계속된 불운이 발목을 붙들었다. 앨범준비를 했지만 돈이 없어 꿈을 못 피웠다. 옮긴 음반회사마저 무너졌다. 가세가 기울자 식구들은 흩어져 끼니걱정을 해야만 했다. 달동네에서 살 때 밤에 도심을 내려다보며 ‘저렇게 집들이 많은데 식구가 한데 모여 살 곳 하나 없나’ 생각하며 거의 매일 울었단다. 2000년~2003년까지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들구나!’ 하는 말을 실감했다며 요즘에도 그 때를 떠올리면 절로 힘이 난다고 했다.

2004년 연말 가요대상 휩쓸어

작곡·작사가 윤명선 씨는 가요계 최고 ‘히트곡제조기’로 통한다. 매니저들 사이에서 ‘경옥고’로 불리는 그는 홍보뿐 아니라 작사·작곡에 음반프로듀서 실력까지 갖춘 가요계 멀티플레이어다. 장동건, 박진영, 김사랑을 스타로 키워냈다. <어머나>로 여러 가요대상 시상식장을 휘젓고 다녔을 만큼 상복이 터졌다. 2004년 연말엔 KBS·서울가요대상(작곡가상)도 휩쓸었다.

가수 옆에 붙어 말이 떨어질 때마다 물건을 대령하던 ‘가방 모찌’ 윤명선은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사장이 돼있다. 그는 트로트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가 노래를 작곡해 준 가수는 김현정, 장나라, 보보, 박상민, 김혜연, 심수봉, 조용필 등에 이르기까지 나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음악작품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얘기다.

‘가요계 마법의 손’ 윤 씨의 음악창작활동은 여전히 대단하다. 국내 가요차트 1위는 물론 나라 밖으로 건너가 타이 인기 차트 1위에 오른 슈퍼 주니어티의 <로꾸거>, 인기 발라드로 노래방 애창곡 1순위였던 이루의〈까만 안경>도 그가 작곡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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