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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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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9.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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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늪이 자꾸 깊어만 간다. 10년 ```전 외환위기 상황과 비슷한 분위기다. 새해가 밝아왔지만 가슴엔 어두운 그림자가 덥혀있어 저마다 표정들이 우울하다. 특히 한 가정을 책임진 서민가장들이 그렇다. 문을 닫거나 가동을 멈춘 일터가 늘어 곳곳에서 한숨소리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다. 그저 안으로 눈물을 흘릴 뿐이다.

김순곤 작사, 임종수 작곡, 조항조 노래의 <남자라는 이유로>는 그런 남자들의 속마음을 너무나도 잘 그려낸 가요다. 그래서 그런지 삶의 무거운 멍에를 진 중년남성들이 대체로 이 노래를 좋아한다. 힘들어 하는 남편 가까이서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년아줌마’들도 덩달아 이 노래 팬이 돼가며 애창하고 있다. 다른 노래와 달리 여성들이 많이 부르는 곡이다.


성인가요 전국 여성선호도 1위

우리나라 대중가요 흐름으로 볼 때 남성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여성들에겐 별로였는데 이 노래만은 그렇잖다. 성인가요부문 전국 여성선호도 1위를 기록할 정도다. 여성들에게 큰 소리 치며 태연하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들도 알고 보면 마음 약하고 말 못할 가슴앓이를 하며 속으로 삭인다는 데 ‘찡한 공감’을 했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가요들에 많이 쓰이는 4분의 4박자 리듬에다 약간 느린 고고 풍으로 맬로디가 이어져 부르기가 어렵지 않은 면도 인기의 한 요인이다. 

<남자라는 이유로>가 본격 선보인 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8년.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다. 특히 위기에 몰린 기업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일터를 떠나야 했던 이들이 줄을 이었다.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직장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실직에다 별거, 이혼, 자살 등이 줄을 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노래가 바로 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다.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이란 신분을 떠나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노부모의 자식으로서 고단한 삶을 꾸려가야 하는 남자들의 외침이자 안으로만 삭히는 한탄의 소리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10여년 방송전파를 타고 노래방 인기곡으로 뜨면서 ‘남성들 마음을 알리는 대표곡’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노래탄생의 뒷얘기도 꽤 재미있다. 노랫말을 쓴 작사가 김순곤 씨는 지난해 6월 5일 경인방송(OBS) SunnyFM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의 코너 ‘그 작곡가 그 작사가’의 첫 초대 손님으로 나와 노래비화를 들려줬다.

“1998년 IMF 때 남성들에게 전폭적인 인기를 받았던 <남자라는 이유로>는 당초 박우철의 앨범에 실렸던 곡으로 박우철이 이 노래로 활동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자신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곡이 후배가수가 불러 히트하자 후회했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조항조가 다른 기획사에서 앨범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이 가사를 듣고는 꼭 부르고 싶어 기획사까지 옮겨가며 이 노래를 발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조항조는 ‘시대흐름으로 볼 때 노래가 뜨겠다’고 판단, 취입을 적극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지금도 시중서점 등에서 팔고 있는 일부 대중가요집 악보가사가 약간씩 다르다. 박우철 노래냐, 조항조 노래냐에 따라 중간 중간 몇 소절에서 표기상 차이가 난다.  

대학교 1학년 때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로 데뷔한 김순곤 씨는 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만 1000곡 쯤 되는 우리나라 대표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또 이 곡을 만든 작곡가 임종수씨 또한 내로라하는 음악인이다. 1972년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을 작사·작곡하며 이름을 크게 알린 가요계 원로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하수영, 1976년), <대동강편지>(나훈아, 1981년), <옥경이>(태진아, 1989년), <부초>(박윤경, 1991년), <모르리·빈 지게>(남진, 2003년), <사랑이 남아있을 때>(문희옥, 2006년) 등 주옥같은 명곡들로 가요계를 이끌어왔다.

가수 조항조는 지난해 봄 데뷔 30년 만에 첫 디너콘서트를 열었다. 가정의 달의 맞아 5월 7~8일 서울 강남 임피리얼 팰리스호텔 두베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디너콘서트’를 연 것이다. 그 자리엔 대규모 아줌마 팬들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뤘다.

그날의 디너콘서트는 조항조에게 의미가 큰 행사였다. 그룹사운드에서 다져진 음악성으로 가요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던 그가 공연연출, 밴드, 음향, 조명, 무대 팀들을 최고로 구성해 직접 지휘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일본서도 큰 인기…번역음반 나와

1979년 그룹사운드 ‘서기 1999년’의 리드싱어로 <나 정말 그대를>를 부르며 가요계에 데뷔한 조항조는 1984년 김지훈이란 예명으로 <구겨진 마음> <청춘>을 발표했다. 그는 가요 톱10(KBS)의 상위권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으나 1986년 돌연 가족들과 미국으로 가면서 활동을 멈췄다.

그는 3년의 공백을 깨고 1989년 팬들과 지인들의 요청으로 귀국했다. 돌아와서 만든 노래 <허무한 사랑> 발표를 계기로 지금의 예명(조항조)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조항조에게 기회가 왔다. 1997년 작곡가 임종수 씨로부터 <남자라는 이유로>란 곡을 받으면서다. 이 노래는 성인가요음반 판매 30만 장이란 놀라운 기록을 낳으면서 한 순간 확 떠버렸다. 깔끔한 무대 매너, 지적이면서 차분하게 보이는 생김새, 가슴에 와 닿는 노랫말, 시대상황에 맞는 곡 등이 히트하게 만들었다는 게 가요계사람들 분석이다.

<남자라는 이유로>는 멀리 바다건너 일본가요팬들로부터도 인기다. <男と言うだけで> 제목을 붙인 일본어 번역음반이 나올 정도다. 동경, 오사카 등지에 가면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과 함께 ‘인기 있는 한국노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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