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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 One father is more than a hundred schoolm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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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 thought] One father is more than a hundred schoolmasters.
  •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 승인 2016.05.12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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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 / 한기훈 한기훈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20대 회사원 시절 어느 날 신문에서 램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교회에 나가기도 전이었지만 그 그림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물론 믿음이 없던 때이니만큼 그저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로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이겠지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미국 영화 중에 ‘빅 피쉬’라는 영화 보셨는지요? 팀 버튼 감독의 2003년 영화였습니다. 주인공이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아내에게 ‘나는 아버지 속에서 나 자신을 보지 못했고, 내 안에서 아버지를 보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이방인들 같았다’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허풍쟁이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하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하나씩 아버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마침내 주인공은 죽어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들의 이야기에 만족한 아버지는 편안하게 숨을 거둡니다.

 

아주 멋진 판타지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는 주제곡, ‘Man of the Hour’라는 노래도 기억에 남는 멋진 음악이었습니다. 미국의 록 밴드인 Pearl Jam의 음악으로 아버지와의 작별을 담담히 노래합니다. 후반 가사는 특히 많이 와 닿는 듯 합니다.

He was guiding me, love, his own way
 Now the man of the hour is taking his final bow
 As the curtain comes down
 I feel that this is just g'bye for now

아버지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으로 나를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이 시대가 주목하는 인물은 마지막 인사를 하려 합니다.

커튼이 내려지고,

나는 이제 아버지와의 이별이란 걸 느낍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저의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아버지와의 특별한 기억이 몇 가지 생각납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서울 근교의 산에 가셨습니다. 거기서 개울물에서 가재 잡는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제게는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산에서 자그마한 관목 한 그루를 캐 와서 집 안 마당에 함께 심고 키웠습니다. 강아지를 한 마리 가져 오시곤 제게 키우도록 하셨고 낚시를 데려가서 피라미 낚시에 재미를 붙이도록 해 주셨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것을 지겨워 하리라는 것을 아시곤 작은 피라미 낚시를 하게 해 주셨던 것이지요. 지금의 판교 부근 저수지에서 아버지와 저는 김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피라미를 낚았습니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었다고 말씀해 주시고 저는 언젠가 경험할 그 일을 꿈꾸곤 했습니다. 장마철 비 내리는 여름날 마루에서 아버지와 나는 수박을 먹으며 바둑을 두었습니다. 아홉 점을 깔고 두다가 나중에는 네 점까지 줄었었지요. 바둑을 두면서 나누었던 대화들이 결국 제게 해 주시는 아버지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 늑막염에 걸려서 며칠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만두를 사 갖고 오신 아버지는 많이 늙어 보였습니다. 저는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말년의 아버지와 대화도 많이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일생을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서 (어쩌면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서) 아버지가 제게 해 주시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당신의 일생으로 제게 가르쳐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미 40대 중반이 되어 있었습니다.

5월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달입니다. 주위를 보면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자녀 간에 벽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머니와는 정서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는 자녀들도 아버지와는 소원하게 지내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제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저는 계속 바빴습니다. 평일에는 늦게 들어오는 일이 흔했고   주말에도 일하러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열 살 이전에만 해도 아주 가깝게 느껴지던 딸 아이가 갑자기 멀게 느껴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중학생 때였고 아이는 조기 유학을 가고 싶어했습니다. 나는 그 때 내가 딸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저는 많이 노력했습니다. 가벼운 대화를 함께 나누는 사이로 복원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많은 가정이 비슷했을 겁니다. 제 친구 중 하나는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는 외동딸과의 사이에 큰 벽이 존재하는 것을 깨닫고 부녀가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이후로도 몇 차례의 여행과 특별한 노력으로 부녀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여러 젊은 아버지들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 같이 보내는 시간을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회사나 사업이나 사회 관계도 가정과 자녀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와 보내는 시간을 뒤로 미루다 보면 어느덧 자녀는 다 커 버립니다. 공감할 추억이 많지 않은 아버지들은 참 불쌍해 보입니다.

해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5월이 되면 그 날을 기억하며 저는 마음 속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를 만나며 제가 아버지임을 느끼는 5월 입니다. 세익스피어의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한 명의 아버지가 백 명의 교사보다 낫다.’ One father is more than a hundred schoolm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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